“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며 하시는 주님의 이 말씀을 들으니
제가 군대 갈 때 서양 철학 교수님의 충고 말씀이 생각납니다.
군대 가는 제자들에게 일반적으로 하신 말씀인지
제가 그렇게 보여 저에게만 하신 말씀인지 모르지만
평소 선생님의 인품에 비추어볼 때
너무 뜻밖의 말씀을 충고로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인 즉,
군대에 가면 요령도 배우고 영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령 피우면 안 된다고 말씀하실 분이 요령을 배워야 하고
영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좀 의아스러웠지만
선생님 말씀이니 무슨 뜻이 있겠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영악하고 요령만 피우면 안 되겠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신학생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려면
세상도 알아야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도 알아야 하고
영리하게 처신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고
그것을 배우는 좋은 기회로 군대를 삼으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한 동안 우리 사회에서 회자된 말이 바보입니다.
바보 김 수환.
바보 노 무현.
모두가 똑똑하고 영리한 것을 추구하는데
반대로 바보를 추구한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들의 위대함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바보스러움이 칭송의 대상이 된 것은
똑똑하고 영리한 것을 추구한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것이라기보다
영악한 것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리함과 영악함은 사실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다릅니다.
요령을 아는 것과 요령을 피우는 것이 다르듯
영리함은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영악함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리하되 영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뱀처럼 슬기롭되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라는 말씀이
이 말씀이 아닐까 저는 생각해봅니다.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 때
형제간에 그리고 부자간에 서로 거스르는 일을 당할 때
어느 마을에서 박해를 받을 때
하느님께서 계시고 하느님께서 해 주시는데
괜히 자기 힘으로 하려고 힘으로 하려하지 말고
하느님을 위해 순교해야 하는데
고작 인간에 의해 상처 받지 말고
내가 한 번 져주어 다른 곳으로 슬쩍 피하면 되는데
끝까지 어느 곳을 고집하며 맞서 싸우지 말라는 것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함은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으로 채우고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하느님으로 무장한 사람의 경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며 하시는 주님의 이 말씀을 들으니
제가 군대 갈 때 서양 철학 교수님의 충고 말씀이 생각납니다.
군대 가는 제자들에게 일반적으로 하신 말씀인지
제가 그렇게 보여 저에게만 하신 말씀인지 모르지만
평소 선생님의 인품에 비추어볼 때
너무 뜻밖의 말씀을 충고로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인 즉,
군대에 가면 요령도 배우고 영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령 피우면 안 된다고 말씀하실 분이 요령을 배워야 하고
영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좀 의아스러웠지만
선생님 말씀이니 무슨 뜻이 있겠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영악하고 요령만 피우면 안 되겠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신학생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려면
세상도 알아야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도 알아야 하고
영리하게 처신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고
그것을 배우는 좋은 기회로 군대를 삼으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한 동안 우리 사회에서 회자된 말이 바보입니다.
바보 김 수환.
바보 노 무현.
모두가 똑똑하고 영리한 것을 추구하는데
반대로 바보를 추구한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들의 위대함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바보스러움이 칭송의 대상이 된 것은
똑똑하고 영리한 것을 추구한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것이라기보다
영악한 것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리함과 영악함은 사실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다릅니다.
요령을 아는 것과 요령을 피우는 것이 다르듯
영리함은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영악함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리하되 영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뱀처럼 슬기롭되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라는 말씀이
이 말씀이 아닐까 저는 생각해봅니다.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 때
형제간에 그리고 부자간에 서로 거스르는 일을 당할 때
어느 마을에서 박해를 받을 때
하느님께서 계시고 하느님께서 해 주시는데
괜히 자기 힘으로 하려고 힘으로 하려하지 말고
하느님을 위해 순교해야 하는데
고작 인간에 의해 상처 받지 말고
내가 한 번 져주어 다른 곳으로 슬쩍 피하면 되는데
끝까지 어느 곳을 고집하며 맞서 싸우지 말라는 것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함은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으로 채우고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하느님으로 무장한 사람의 경지인 것 같습니다.
먹이를 노려보는 뱀을 생각해봅니다.
그 신중함, 집중력..
물어버리던지, 도망가든지 결정하는 분별력..
그 지혜를 배우라 하시는 것인지요..^^
비둘기는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 배신하지 않고 순결을 지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결을 상징하는 동물이구요..
뱀같이 지혜롭되 순결하여라..
지혜와 순결함..
안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조화롭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리들 속에서 양들이 세상 사는 비결인 듯 해요.^^
보면서도 알아볼 수 없고
보여지지 않는 것이
너무도 많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찌 그것을 일일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만
무엇보다 세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상을 거꾸로 바라봄이
아닐까도 여겨집니다.
가끔은 우리네
인간의 삶의 모습과 넋두리들이
꿈인 것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실제가 아닌 꿈이려니,
이꿈이 지나가고
진짜 현실이 돌아올 것 같은 것
말입니다.
사람이기에
인간이기에
차마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지구상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똑같은 땅을 밟고 서 있는
같은 모습의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꿈을 살 수 없어서
이런 꿈을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어서
현실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말하는
세상의 이치에 걸맞지 않는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어차피
현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을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 그들은
우리와 달리
세상을 거꾸로 본 사람들이고
세상을 거꾸로 보니
세상이 바로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아닌 타인들 모두가 곧
자기 스스로일 수 밖에
느낄 수 없었던,
세상 모든 아픔과 눈물이
곧 나의 아픔과 눈물이 되었던
그런 사람들,
그들이 눈물겹도록 그립습니다.
나에게는
자랑 할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 입니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하느님으로 무장한 사람-
그렇게 살고 싶은게 저의 가장 큰 바람인데 그 때는 언제가 될런지요...
일상의 작은 일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제 모습이 너무 자주 보입니다.
그런 저를 하느님께선 사랑한다 하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