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꺽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말씀을 통해
바리사이인들로부터 박해받는 예수님을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야훼의 종으로 비유하면서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종은 올바름을 선포하지만,
그 올바름이 승리로 이끌려 질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꺽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자니,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인내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진리를 거부하는 세상안에서,
사람보다 율법을 더 숭배하는 종교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인내하시며 아버지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내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항상 조급해하는 미숙한 저의 모습,
즉, 어떤 노력에 대한 결과가 바로 나오기를 바라는 저의 모습을
반성합니다.
제가 하는 기도는 효과가 있어야하고,
제가 하는 선행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하고,
제가 하는 일은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만 만족해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는,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고,
겸손하게 인내하기 보다는,
성급히 판단하는 교만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 하루의 일안에서,
나의 노력에 대한 어떤 결과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행함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부러진 갈대를 꺽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말씀을 통해
바리사이인들로부터 박해받는 예수님을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야훼의 종으로 비유하면서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종은 올바름을 선포하지만,
그 올바름이 승리로 이끌려 질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꺽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자니,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인내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진리를 거부하는 세상안에서,
사람보다 율법을 더 숭배하는 종교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인내하시며 아버지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내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항상 조급해하는 미숙한 저의 모습,
즉, 어떤 노력에 대한 결과가 바로 나오기를 바라는 저의 모습을
반성합니다.
제가 하는 기도는 효과가 있어야하고,
제가 하는 선행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하고,
제가 하는 일은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만 만족해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는,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고,
겸손하게 인내하기 보다는,
성급히 판단하는 교만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 하루의 일안에서,
나의 노력에 대한 어떤 결과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행함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깊이 묵상 합니다.
바라는 것이 괴로움의 시작 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만을 바랍니다.
“제가 하는 기도는 효과가 있어야하고,
제가 하는 선행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하고,
제가 하는 일은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만 만족해하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마음이 무너지는 아픔을 경험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흐름이
“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다는 동질감이
서로를 이해하고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음 일겁니다.
하느님 사랑이 우리들 안에 흐르는 한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는“
우리들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저 역시
오늘 하루의 일안에서,
나의 노력에 대한 어떤 결과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행함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