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표징을 보여 달라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심한 말씀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표징을 보여 달라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쁘다고
악하다고 하시고 절개 없다고 하시는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언뜻 보면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잘 뜯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표징을 요구하는 그 뜻이 무엇일까요?
표징, 그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의 표를 뜻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당신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분, 바로 임마누엘이니 말입니다.
당신 자신이 그들이 요구하는 하느님의 표징인데 몰라봅니다.
그래서 보여 줄 다른 표징이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보여 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몰라보는 자신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본래 제가 그러하지만 요즘 와서 더 심해진 것이
약속을 자주 까먹고
있었던 일이나 한 말을 기억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허물로 그치면 문제가 없는데
오해를 하고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에 문젭니다.
예를 들면 형제 중의 하나가 일 때문에 어디를 다녀오면
수호자인 저에게 얘기도 하지 않고 다녀왔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짢은 마음을 한 동안 가지고 있다가
왜 그랬냐고 물으면 허락을 청했지 않냐고 답합니다.
언제, 어디서 허락을 청했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생각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것이 많아지다보니 이제는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내가 또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하고 아예 접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30 대 청원장을 할 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애꿎은 청원자들을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나쁩니까?
마치 치매 노인이 당신을 지극 정성으로 돌본 며느리를
밥도 굶기는 나쁜 년으로 만들 듯이
자기의 죄와 허물과 악을 보지 않고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의인을 죄인으로 만드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나의 교만을 회개하고
사랑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나의 미움을 회개하고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쏟으신 하느님께 불충한
나의 절개 없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표징을 보여 달라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심한 말씀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표징을 보여 달라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쁘다고
악하다고 하시고 절개 없다고 하시는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언뜻 보면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잘 뜯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표징을 요구하는 그 뜻이 무엇일까요?
표징, 그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의 표를 뜻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당신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분, 바로 임마누엘이니 말입니다.
당신 자신이 그들이 요구하는 하느님의 표징인데 몰라봅니다.
그래서 보여 줄 다른 표징이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보여 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몰라보는 자신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본래 제가 그러하지만 요즘 와서 더 심해진 것이
약속을 자주 까먹고
있었던 일이나 한 말을 기억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허물로 그치면 문제가 없는데
오해를 하고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에 문젭니다.
예를 들면 형제 중의 하나가 일 때문에 어디를 다녀오면
수호자인 저에게 얘기도 하지 않고 다녀왔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짢은 마음을 한 동안 가지고 있다가
왜 그랬냐고 물으면 허락을 청했지 않냐고 답합니다.
언제, 어디서 허락을 청했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생각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것이 많아지다보니 이제는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내가 또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하고 아예 접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30 대 청원장을 할 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애꿎은 청원자들을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나쁩니까?
마치 치매 노인이 당신을 지극 정성으로 돌본 며느리를
밥도 굶기는 나쁜 년으로 만들 듯이
자기의 죄와 허물과 악을 보지 않고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의인을 죄인으로 만드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나의 교만을 회개하고
사랑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나의 미움을 회개하고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쏟으신 하느님께 불충한
나의 절개 없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바라고 따르는 행위일겁니다.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 하니
표징을 달라는 것도
무리는 아닐듯 합니다.
세상 모두가 믿음을 버려도
나만큼은 믿음을 버릴 수 없다는
그런 처연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온전한 믿음을 갖고 살기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믿음을 얻기는
정말 어려운 일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회개와 노력이
남달라야 할 것이고
늘 다시 돌아봄으로
천금같은 하루를
열어야 하겠습니다.
저의 교만이,
저의 미움이,
저의 절개 없음이,
끝을 보는 그날,
저의 회개도 끝이 나겠지요.
고맙습니다.
정동 건물공사로 허드렛일하시면서
과로하신 탓 아닐까요? ㅋㅋㅋ
사랑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나의 미움을 회개하고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쏟으신 하느님께 불충한
나의 절개 없음을 회개해야 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