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하늘 아래
가을은 사과처럼 빨갛다.
노란 은행잎
주홍의 벚나무와 느티나무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길
먼 산의 낙엽송
산골에 피어오르는 파르스름한 저녁연기
감나무 끝에 남은 몇 개의 홍시
가을은 익을 만큼 익었다.
나목이 되기 전의 나무처럼
내려놓음의 홀가분함이여!
수도원의 작은 정원에도 가을이 깊어간다.
낙엽들이 쌓이는 곳에 홀로 서서 하늘을 본다.
얼마 남지 않은 단풍잎에
온갖 채광이 넘쳐 꿈속처럼 윤이 흐른다.
따습고 온유하게
엷은 슬픔처럼 쓸쓸하게 가을에 취해 있었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고귀한 수혈을 받는다.
지쳤을 때 부담 없이 기대게 해주는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덕이 되는 나무처럼 살고 싶었지
말없이 사랑하는 한그루의 미루나무로...
여기 만추의 하늘아래
내 삶을 내려놓고 그냥 그렇게
서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