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지난 5월부터 저는 일을 우리 정동수도원 공사장으로 나가고 있는데
요즘 정동길이 마지막 찬란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이파리의 노랑이 봄 개나리의 노랑과는 같으면서도
사뭇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봄 개나리의 노랑이 생기와 생성의 아름다움을 뽐낸다면
가을 은행나무의 노랑은 성숙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은행나무를 좋아해서 제가 처음 작곡한 것도
소신학교 때 은행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느낌을 노래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볼 때나
바람에 이파리들이 화리락 떨어지는 것을 볼 때 '아!'하고 감탄이 나오고,
조금 더 감탄이 이어지면 '아! 참 아름답다.'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데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오늘 복음도 성전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이 감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돌들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초를 치십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강해도 다 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뭐든지 다 종말의 때가 있어서 그 때가 되면 나뭇잎은 떨어지고,
성전은 허물어지고, 사람이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다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종말이 올 때 당황하거나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종말이 있다는 것을 우선 알아야 하고 다음은 늘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때가 왔을 때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종말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인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겠습니다.
그런데 종말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알지요. 그렇지만 이런 사람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종말의 때가 있다는 것은 아는데
종말의 때가 왔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또는 지금이 바로 종말의 때라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말을 들을 때 저는 여러 느낌이 교차합니다.
세월에 순응치 않고 청춘이라고 억지 부리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나이 먹었다고 우울하고 의기소침하게 살지 않고 나이를 먹어서도
활기차게 살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 같아서 좋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종말의 때를 당황하지 않고 잘 맞이하고
소위 말하는 선종을 잘하려면 이 때에 순응을 하고 때에 맞게 살아야겠지요.
종말을 우울하게 여기지 않고 반대로 종말을 거부하듯 나대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종말과 관련하여 신앙 없는 사람들과 달라야겠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때가 아니라 하느님을 맞이하는 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종말은 삭막한 종말이 아니라 인격적인 종말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종말은 얼마나 불행하고 비참합니까?
그러니 옆에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고 온 가족과 친구가 있다면
그 죽음과 종말은 복되다고 할 수 있고 호상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인격적인 종말은 가족 친지뿐 아니라
무엇보다 하느님 안에서 임종하는 것이고,
이런 죽음이 선종이고 성사적인 종말이지요.
사실 하느님 없이 맞이하는 종말은 인생이 끝장나는 멸망일 뿐입니다.
불행하고 비참한 인생은 하느님은 없고 고통뿐인 인생인데
그보다 더 불행하고 비참한 것이 하느님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하느님을 외면하고 살았더라도 죽을 때 그것을 뉘우치고,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맞이하는 끝이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침을 받는
오늘이고 연중 마지막 시기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시는 거다!)
http://www.ofmkorea.org/165953
17년 연중 제33주일
(칭찬 받고 싶지 않으세요?)
http://www.ofmkorea.org/114292
16년 연중 제33주일
(평신도도 성소다.)
http://www.ofmkorea.org/95254
15년 연중 제33주일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오시고 보이는 주님)
http://www.ofmkorea.org/84318
14년 연중 제33주일
(어진 하느님, 모진 하느님?)
http://www.ofmkorea.org/72095
13년 연중 제33주일
(지옥도 천국인 경지)
http://www.ofmkorea.org/57767
12년 연중 제33주일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
http://www.ofmkorea.org/44012
11년 연중 제33주일
(사랑하는 사람만이 성실하다)
http://www.ofmkorea.org/5372
10년 연중 제33주일
(파멸과 아름다운 소멸)
http://www.ofmkorea.org/4572
08년 연중 제33주일
(죽음 성찰)
http://www.ofmkorea.org/1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