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라 해도 제자들을 잘 못 사랑하신 것이 아닐까?
저의 기준에서 볼 때 편애는 공동체를 망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편애하신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그리고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가 그들입니다.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릴 때와 타볼산의 거룩한 변모 때
주님께서는 이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야고보와 요한 두 형제의 어머니는 자기 두 아들을 부탁합니다.
이번 상경 길에 주님이 권력을 차지하게 되면
그 세속 왕국의 2인자, 3인자 자리를 달라고 청탁합니다.
그러나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보면 그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자를 겟세마니 동산에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당신이 마셔야 할 잔, 독배를 마시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이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그 독배를 같이 마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복음 복음에서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들이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하였는데
이 대답이 씨가 되어 이들도 독배를 마시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도들 중 제일 먼저 수난의 잔을 마신 사도지요.
묵상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특별한 사랑을 보이심은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위함인데,
당신의 특별한 도구란 당신 십자가를 져 나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며 유난히 더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되면,
나의 책임이 누구보다 무겁다고 느껴지면
하느님께서 나를 더 사랑하셔서
당신 십자가의 공동 운반자로 나를 뽑으셨다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요 며칠 건설 폐기물을 내오는 작업을 하였는데
계단을 오르면서 십자가를 진다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담가를 이용하여 둘이 같이 나르기도 했는데
담가의 한 쪽은 주님이
다른 한 쪽은 내가 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이라 해도 제자들을 잘 못 사랑하신 것이 아닐까?
저의 기준에서 볼 때 편애는 공동체를 망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편애하신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그리고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가 그들입니다.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릴 때와 타볼산의 거룩한 변모 때
주님께서는 이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야고보와 요한 두 형제의 어머니는 자기 두 아들을 부탁합니다.
이번 상경 길에 주님이 권력을 차지하게 되면
그 세속 왕국의 2인자, 3인자 자리를 달라고 청탁합니다.
그러나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보면 그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자를 겟세마니 동산에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당신이 마셔야 할 잔, 독배를 마시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이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그 독배를 같이 마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복음 복음에서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들이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하였는데
이 대답이 씨가 되어 이들도 독배를 마시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도들 중 제일 먼저 수난의 잔을 마신 사도지요.
묵상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특별한 사랑을 보이심은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위함인데,
당신의 특별한 도구란 당신 십자가를 져 나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며 유난히 더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되면,
나의 책임이 누구보다 무겁다고 느껴지면
하느님께서 나를 더 사랑하셔서
당신 십자가의 공동 운반자로 나를 뽑으셨다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요 며칠 건설 폐기물을 내오는 작업을 하였는데
계단을 오르면서 십자가를 진다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담가를 이용하여 둘이 같이 나르기도 했는데
담가의 한 쪽은 주님이
다른 한 쪽은 내가 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고통을 사랑 해야 겠습니다.
말씀 나누기를 통해 정리하시고,
그로 인해 형제를 담가를 이용해 무거운 짐을 함께 나르는 그리스도로 여기시는
마음을 배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랑은 받은 만큼 주어야 하고
주는 만큼 받는다는, 이 원리
그래서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거지요.
그러니 내가 누구보다 많이 받았다고 자랑하고 좋아만 할 것도 없지요.
이웃이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결핍을 겪고 있다면,
내가 더 받았으면서 이웃과 나누지 않는 인색함 때문임을 깊이 깨달아야겠지요.
고맙습니다.
당신 십자가의 공동 운반자로
나를 뽑으셨다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아멘.
다른 한 쪽은 내가 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