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돌아가신 김대중 토머스 모어 형제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을 자주하였다고 모든 매체는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분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의 철학이 분명 있었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였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 하느님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답했기 때문입니다.
본당 보좌로 발령받은 지 이제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매주 학생들과 청년들의 캠프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매일 미사를 거행하고 성사를 집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나는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나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내가 수도자로서 사목자로서 어떠한 삶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무엇을 하기보다 함께 있고,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동반하고,
무엇을 이끌기보다는 뒷받침하는 것.
제 나름의 목표이며 제가 바라보았던
그리스도의 모습은 조금씩 잊혀지고,
어느 순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불행하리라고 바리사이들에게 던지신 말씀이
제게 걸리는 것은 아마 제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잔 속을 깨끗하게 하라는 말씀이
새삼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다시금 저를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르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빛, 양심에 귀 기울일 때,
행동하는 양심에 조금 더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을 자주하였다고 모든 매체는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분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의 철학이 분명 있었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였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 하느님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답했기 때문입니다.
본당 보좌로 발령받은 지 이제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매주 학생들과 청년들의 캠프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매일 미사를 거행하고 성사를 집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나는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나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내가 수도자로서 사목자로서 어떠한 삶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무엇을 하기보다 함께 있고,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동반하고,
무엇을 이끌기보다는 뒷받침하는 것.
제 나름의 목표이며 제가 바라보았던
그리스도의 모습은 조금씩 잊혀지고,
어느 순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불행하리라고 바리사이들에게 던지신 말씀이
제게 걸리는 것은 아마 제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잔 속을 깨끗하게 하라는 말씀이
새삼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다시금 저를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르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빛, 양심에 귀 기울일 때,
행동하는 양심에 조금 더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또는
욕구가 흐르는 대로 살다가
문득 제 정신이 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가?"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있지요.
자동적 사고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마치 물고기가 수 없이 지느러미를 치듯
깨여있는 작업은 쉽지 않네요.
오늘 복음에서도 “눈먼 인도자들아!
먼저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 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잔 속을 깨끗하게 하라는 말씀이
새삼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속은 보이지 않는 다는 걸 악용해 겉치레에 신경 쓰는
헛된 하루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