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
관계의 단절을 가져온 어둠
그 감옥에 있을 때
사랑을 거부하고
사랑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경험한다.
나는 너를 나에게 오지 못하게 하겠다.
보기도 싫고
만나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다.
미움이 증대되면
싫은 것을 넘어 폭력을 행한다.
언어의 폭력
눈빛과 표정의 폭력
말을 하지 않는 폭력
그리고 마침내 악마적인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물리적 폭력과 더불어 죽이려는 마음에까지 이른다.
이것이 어둠에 갇혀 있는 동안 경험하는 진짜 어둠이다.
출구가 없는 감옥
그 참담한 어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빛,
별의 인도로 예수를 만나게 해준 빛,
누군가가 예수님의 무덤을 막아놓은 돌을 굴려 주는 일,
누군가가 선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느낄 때,
먼저 다가와 건네는 사랑스럽고 다정한 말 한마디,
말없이 다가와 일상의 불편을 덜어주는 작은 선행들,
어둠 속에서는 의심의 불을 켜고 있지만
일상의 작은 것들 안에서 변화는 일어난다.
외부로부터 오는 아주 단순한 사랑이
저수지에 뚫린 작은 구멍처럼 마침내 둑을 무너뜨린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감옥에서의 탈출이
외부로부터 누군가가 보내는 사랑으로
조금씩 조금씩 빛을 받아 열리기 시작한다.
의심은 변화를 시작하는 첫 신호다.
마음에서 정신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윤리적 의심으로
존재론적인 의심으로
마침내 전 존재의 와해를 불러오는 바닥의 진실과 직면하게 된다.
자신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바닥의 진실을 보게 되면
모든 원인이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둠이라는 혼돈 속에서 창조하는 에너지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
이 창조의 힘으로 시작하는 믿음은
혼돈 속에서도 다시는 흔들리지 않게 한다.
실존적인 어둠을 경험한 사람이
밖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힘으로 새로 태어나면
다시는 어둠으로 도망치거나 돌아갈 수 없다.
공현의 신비는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우리가 행하는 선의 실천으로
드러나게 하는 일이다.
2020, 1, 5. 주님의 공현 축일에
이기남 마르첼리노 마리아 형제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