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정보의 홍수입니다.
그래서 그 정보를 선택하는 나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나는 그 무수한 정보들 앞에서 선택해야 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안 듣기가 되어갑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나머지는 알아서 걸러듣습니다.
그러니 누가 이야기를 해도 자기 식으로 이해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입으로는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려라”입니다.
우리의 귀와 입을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표현과 통교를 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시는 하늘나라입니다.
모두가 하느님과 세상으로부터 오는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이해하며,
모두가 해석도 가감도 하지 않은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공평하기에 어떠한 차별도 이루어지지 않고,
눈먼 이는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며,
다리 저는 이가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대화가 없어지고,
내가 홀로 살아가야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분명 하느님은 계시지만,
그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말씀도 울려펴지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결정으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목소리만 들을 수 있지만,
하느님의 목소리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
달콤한 속삭임에 귀를 쫑긋 세울 수 있지만,
쓰디쓴 진리에 귀를 닫을 수 있습니다.
옥구슬 구르는 목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그 안에 진리는 담지 않으려 합니다.
하느님은 이런 우리에게 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편견과 해석의 틀을 벗어버리고,
세상에서 울려나오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시금 세상에 구원의 환성을 터뜨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귀와 입을 열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도,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정보를 선택하는 나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나는 그 무수한 정보들 앞에서 선택해야 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안 듣기가 되어갑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나머지는 알아서 걸러듣습니다.
그러니 누가 이야기를 해도 자기 식으로 이해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입으로는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려라”입니다.
우리의 귀와 입을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표현과 통교를 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시는 하늘나라입니다.
모두가 하느님과 세상으로부터 오는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이해하며,
모두가 해석도 가감도 하지 않은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공평하기에 어떠한 차별도 이루어지지 않고,
눈먼 이는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며,
다리 저는 이가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대화가 없어지고,
내가 홀로 살아가야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분명 하느님은 계시지만,
그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말씀도 울려펴지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결정으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목소리만 들을 수 있지만,
하느님의 목소리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
달콤한 속삭임에 귀를 쫑긋 세울 수 있지만,
쓰디쓴 진리에 귀를 닫을 수 있습니다.
옥구슬 구르는 목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그 안에 진리는 담지 않으려 합니다.
하느님은 이런 우리에게 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편견과 해석의 틀을 벗어버리고,
세상에서 울려나오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시금 세상에 구원의 환성을 터뜨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귀와 입을 열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도,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