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계신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묻는 이 질문 앞에 나는 잠시 10여 년 전 성소자 시절이 떠오른다.
집에서 약간 떨어진 이웃 본당에 우연히 미사참례 할 기회가 생겼다.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시작성가를 부를 무렵 성당 뒤에서 신부님과 어린이 복사들이 입당하기 시작하는데, 저 신부님 복장이 왜 저런가?
제의 안에 입으신 것은 수도복 같은데, 양말도 신지 않고 샌달을 질질 끌고 나오는게 아닌가? 속으로 “신부님이 뭐 저래?”라는 말이 자연스레 마음 안에서 울려왔지만,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그 수사 신부님의 우렁찬 성가소리와 하느님의 영에 취한 듯한 강론은 성소를 찾아 헤메이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리라.
과연 저 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수도복을 입으면서 샌달을 신었어?
도대체 어떤 길을 걸어가는 분들일까?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당시 나는 하느님이 과연 누구일까? 죽음은 과연 무엇인가? 등등 삶과 죽음에 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그 때 단지 눈에 보였던 것이 어느 수사신부님의 외적으로 드러난 복장이었지만, 이를 통해 전해졌던 풀꽃 향기와 같은 은은한 기운은 나의 혼란한 내면을 깨끗히 씻어내기에 충분했으리라.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 씻고 수도복을 입을 즈음에는 무한한 기운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며 서운했던 기억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마음들,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생각들... 수도복을 입고 십자가 모양의 caput을 머리에 얹고 띠를 메고 있노라면, 그 순간 모든 생각들이 숨을 죽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 가운데 있음을 느낀다.
이 순간 나의 정체성을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누더기만 걸친 채 동냥하러 다니셨던 성 프란시스!
등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허리에는 가난, 정결, 순명의 보화를 묶고
복음 말씀을 항상 간직했던 성 프란시스!
복음 말씀 안에 있으면, 자연스레 내가 없어지듯
그 순간 예수님은 우리 안에 완전한 기운으로 들어오신다.
비록 수도복을 통해서지만, 많은 이들의 체험 한 가운데에도 나의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 있었던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이러한 정체성에 관한 물음과 더불어 십자가를 지고 가야만 하는 아버지의 뜻이 강하게 선포된다.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삶의 무게를 짓누르는 십자가 앞에서 진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그리스도인의 참 의미가 내 마음 깊숙이 자리할 것이다.
이것을 나의 십자가로 여기고 내려놓지 못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계속 외쳐 불러도 그분의 음성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계신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묻는 이 질문 앞에 나는 잠시 10여 년 전 성소자 시절이 떠오른다.
집에서 약간 떨어진 이웃 본당에 우연히 미사참례 할 기회가 생겼다.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시작성가를 부를 무렵 성당 뒤에서 신부님과 어린이 복사들이 입당하기 시작하는데, 저 신부님 복장이 왜 저런가?
제의 안에 입으신 것은 수도복 같은데, 양말도 신지 않고 샌달을 질질 끌고 나오는게 아닌가? 속으로 “신부님이 뭐 저래?”라는 말이 자연스레 마음 안에서 울려왔지만,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그 수사 신부님의 우렁찬 성가소리와 하느님의 영에 취한 듯한 강론은 성소를 찾아 헤메이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리라.
과연 저 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수도복을 입으면서 샌달을 신었어?
도대체 어떤 길을 걸어가는 분들일까?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당시 나는 하느님이 과연 누구일까? 죽음은 과연 무엇인가? 등등 삶과 죽음에 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그 때 단지 눈에 보였던 것이 어느 수사신부님의 외적으로 드러난 복장이었지만, 이를 통해 전해졌던 풀꽃 향기와 같은 은은한 기운은 나의 혼란한 내면을 깨끗히 씻어내기에 충분했으리라.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 씻고 수도복을 입을 즈음에는 무한한 기운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며 서운했던 기억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마음들,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생각들... 수도복을 입고 십자가 모양의 caput을 머리에 얹고 띠를 메고 있노라면, 그 순간 모든 생각들이 숨을 죽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 가운데 있음을 느낀다.
이 순간 나의 정체성을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누더기만 걸친 채 동냥하러 다니셨던 성 프란시스!
등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허리에는 가난, 정결, 순명의 보화를 묶고
복음 말씀을 항상 간직했던 성 프란시스!
복음 말씀 안에 있으면, 자연스레 내가 없어지듯
그 순간 예수님은 우리 안에 완전한 기운으로 들어오신다.
비록 수도복을 통해서지만, 많은 이들의 체험 한 가운데에도 나의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 있었던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이러한 정체성에 관한 물음과 더불어 십자가를 지고 가야만 하는 아버지의 뜻이 강하게 선포된다.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삶의 무게를 짓누르는 십자가 앞에서 진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그리스도인의 참 의미가 내 마음 깊숙이 자리할 것이다.
이것을 나의 십자가로 여기고 내려놓지 못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계속 외쳐 불러도 그분의 음성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계십니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