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누가 큰 사람인가?
키가 큰 사람?
통이 큰 사람?
누가 높은지를 따지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높이를 얘기하지 않으시고
받아들임을 얘기하시는 것으로 보아
키가 큰 사람이 아니라 통이 큰 사람입니다.
통이 제일 큰 사람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것에 견주어 얘기한다면
바다보다도 크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다는 제일 크지만 제일 낮습니다.
낮을수록 크니 하느님은 바다보다 낮으시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만큼 낮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어린이보다 낮아야 하고
어린이보다 낮으신 그리스도보다 낮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처럼 낮은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통이 큰 사람은 낮고 작은 사람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패거리 짓을 아니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마당발입니다.
요즘말로 까칠하게 좋고 싫음이 너무도 분명하고
유치하게 애증에 따라 네 편 내편이 갈리고
영악하게 유익이 되고 해가 됨을 너무 따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처럼 사랑이 엄청 큰 사람입니다.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누가 큰 사람인가?
키가 큰 사람?
통이 큰 사람?
누가 높은지를 따지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높이를 얘기하지 않으시고
받아들임을 얘기하시는 것으로 보아
키가 큰 사람이 아니라 통이 큰 사람입니다.
통이 제일 큰 사람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것에 견주어 얘기한다면
바다보다도 크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다는 제일 크지만 제일 낮습니다.
낮을수록 크니 하느님은 바다보다 낮으시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만큼 낮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어린이보다 낮아야 하고
어린이보다 낮으신 그리스도보다 낮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처럼 낮은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통이 큰 사람은 낮고 작은 사람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패거리 짓을 아니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마당발입니다.
요즘말로 까칠하게 좋고 싫음이 너무도 분명하고
유치하게 애증에 따라 네 편 내편이 갈리고
영악하게 유익이 되고 해가 됨을 너무 따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처럼 사랑이 엄청 큰 사람입니다.
어제는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을 앞두고 성인의 영성을
새롭게 되새기는 의미로 재속회 월례회 교육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한 영화를 교육대신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영화의 속의 대화중에 “땅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하늘이다‘라는 말이
“사람의 아들은 섬기려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노라.”
라는 말씀과 함께 연결되어 떠오르며
우리가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살 수 있는 까닭은
하늘이 존재하기 때문임을 다시 한 번 더 묵상하는 순간이었죠.
양성 교육 현장에서 ‘땅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하늘이다, 라는
진실을 전하는 사람은 작은 자가 됨으로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
참으로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이러한 역설적인 태도를 양성현장에서 양성교육자는 자신의 언행과
그 언행에 묻어나는 뉘앙스, 이 모든 것을 통해
양성자에게 본을 보여줘야 함이,
참으로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하는 하루였고
새삼 “와서 보시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피부에 닿는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영성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말 하는가 봅니다.
“통이 큰 사람은 낮고 작은 사람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패거리 짓을 아니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마당발입니다.
요즘말로 까칠하게 좋고 싫음이 너무도 분명하고
유치하게 애증에 따라 네 편 내편이 갈리고
영악하게 유익이 되고 해가 됨을 너무 따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처럼 사랑이 엄청 큰 사람“임을
마음 깊이 새기는 오늘이 되도록 마음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