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치유사화입니다.
하나는 치유된 뒤 감사를 드리러 예수님께 왔고
아홉은 오지 않았습니다.
감사드리러 오지 않은 아홉에 대해서
저는 너무 나무라고 싶지 않습니다.
나무라는 마음 대신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그 아홉도 감사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긴 생애동안 병의 고통을 당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이 없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감사드리러 오지 않았을 뿐일 것입니다.
마음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니 애처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는 해도
이 아홉의 경우는 표하지 않을 정도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면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들은 그 정도는 아니기에 감사를 표하러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주 한우리 징검다리들과 강원도로 Workshop을 갔습니다.
그간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여행하는 그런 성격도 띠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치 좋은 길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면서 저를 비롯한 남자들은 한 번 감탄을 하고 마는데
자매님들은 아름다운 경치가 나올 때마다
매번 감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들은 감탄이 열 번 중 한 번만 넘치는데
자매님들은 감탄이 매번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매번 감탄하시냐?”고 농 삼아 말씀드렸지만
누가 더 행복한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열 번을 봐도 열 번을 다 감탄하는 사람과
열 번을 봤지만 한 번만 감탄을 하는 사람.
열 번에 한 번만 감탄이 넘치는 사람보다는
매 번 감탄이 넘치는 사람이 더 충만하게 사는 사람이니
그가 당연히 더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感자가 들어가는 모든 말은 기울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넘쳐서 나오는 것입니다.
感動,
感興,
感歎,
感情, 그리고
感謝.
이런 것들은 절대로 기울여 나오는 것들이 아닙니다.
기울여 나오면 비어지기 때문에 그 뒤 공허감이 남지만
넘쳐서 나오면 자신도 채우고 남도 채우는 것이 됩니다.
나도 만족, 너도 만족이고
나도 충만, 너도 충만입니다.
그런데 感謝는 感자가 들어가는 그 많은 말들 중에서도 특별합니다.
감사는 은총, 은혜에 대한 감사이기에
감사가 넘쳐 나오는 순간 은총으로 충만해집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음은
하느님 손해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그 큰 은총으로도 다 차지 않는 자기 손해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 감사를 드립시다.
횟수로는 매 번,
양으로는 넘치게 감사를 드립시다.
하나는 치유된 뒤 감사를 드리러 예수님께 왔고
아홉은 오지 않았습니다.
감사드리러 오지 않은 아홉에 대해서
저는 너무 나무라고 싶지 않습니다.
나무라는 마음 대신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그 아홉도 감사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긴 생애동안 병의 고통을 당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이 없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감사드리러 오지 않았을 뿐일 것입니다.
마음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니 애처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는 해도
이 아홉의 경우는 표하지 않을 정도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면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들은 그 정도는 아니기에 감사를 표하러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주 한우리 징검다리들과 강원도로 Workshop을 갔습니다.
그간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여행하는 그런 성격도 띠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치 좋은 길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면서 저를 비롯한 남자들은 한 번 감탄을 하고 마는데
자매님들은 아름다운 경치가 나올 때마다
매번 감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들은 감탄이 열 번 중 한 번만 넘치는데
자매님들은 감탄이 매번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매번 감탄하시냐?”고 농 삼아 말씀드렸지만
누가 더 행복한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열 번을 봐도 열 번을 다 감탄하는 사람과
열 번을 봤지만 한 번만 감탄을 하는 사람.
열 번에 한 번만 감탄이 넘치는 사람보다는
매 번 감탄이 넘치는 사람이 더 충만하게 사는 사람이니
그가 당연히 더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感자가 들어가는 모든 말은 기울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넘쳐서 나오는 것입니다.
感動,
感興,
感歎,
感情, 그리고
感謝.
이런 것들은 절대로 기울여 나오는 것들이 아닙니다.
기울여 나오면 비어지기 때문에 그 뒤 공허감이 남지만
넘쳐서 나오면 자신도 채우고 남도 채우는 것이 됩니다.
나도 만족, 너도 만족이고
나도 충만, 너도 충만입니다.
그런데 感謝는 感자가 들어가는 그 많은 말들 중에서도 특별합니다.
감사는 은총, 은혜에 대한 감사이기에
감사가 넘쳐 나오는 순간 은총으로 충만해집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음은
하느님 손해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그 큰 은총으로도 다 차지 않는 자기 손해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 감사를 드립시다.
횟수로는 매 번,
양으로는 넘치게 감사를 드립시다.
기울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넘쳐서 나오는 것 입니다. "
주신 말씀 감사 합니다.
남은 여정 하느님으로 넘쳐 하느님의 길을 걸어 갑니다.
어떠한 상황 이라도
웃음을 잃지 않고
감사 하는 마음으로
살아 가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어제는, 가장 보잘것 없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사시면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웃음을 잃지않고 사시는 수녀님을 만나 뵙고 오니
저도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상대에게 말하는 그 순간,
제 마음이 무언가로 꽉 차는 흐뭇함을 느끼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말씀하신
“나도 만족, 너도 만족이고
나도 충만, 너도 충만“함 인가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라는 것,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고 행복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로
경험하며 살아가도록 우리의 삶의 법칙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참으로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음은
하느님 손해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그 큰 은총으로도 다 차지 않는 자기 손해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