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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er aertsen_butchers stall.jpg


제목: 정육점 (Butchers Stall : 1556 <자선을 베푸는 성가족이 있는 정육점>)

작가: Pieter Aertsen 피터 에르켄 (1508- 1575)

크기; 목판 유채 123X 167 cm

소재지: 스웨덴 웁살라 미술관

 

16세기에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안트베르펜에서 활동한 작가 피테르 아르첸(Pieter Aertsen)은 시장이나 부엌 장면을 주로 그린 그 분야의 선구자였다.

 

유럽 북쪽에 위치한 네델란드는 문화 예술의 진원지였던 교황청이 있는 이태리나 스페인 프랑스와 전혀 다른 화풍을 진작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일반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그린 풍속화가 특색있게 발전했다.

 

화란이 종교개혁에 의해 칼빈주의의 개신교가 되면서 가톨릭 적인 경향 특히 성서에 나타나는 사실이나 성인들이 대종이었던 가톨릭 성화에 대해선 자연스러운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당시 16세기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노동, '하층 인생'을 주제로 한 풍속화들은 중산층의 주요 후원자나 상류층 구매자들의 즐거운 감상이 되었다.

 

지면이 바다 보다 낮은 국토를 지닌 사람들에게 생존의 수단으로 생긴 진취성은 예술에 있어서도 드러나게 되었다. 즉 성서나 교회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되는 사고가 아닌 일상 삶의 현장에서 익힌 현실에서부터 신앙의 진면모를 확인코자 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생기게 되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후 화란 교회가 만든 교리서는 이 관점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과거 트리엔트 공의회 교리서는 하느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의문 제시로 시작하는데 반해 화란 교리서는 위대하고 비참한 인간이라는 주제로 시작되면서 현실에서 신앙을 찾게 만드는 획기적 방법론을 제시했는데 , 이런 현실에서 하느님으로 올라가는 사고방식은 벌써 작가의 작품에서도 드러나게 되었다

 

개신교가 된 화란인들에게는 가톨릭 방식의 성인이나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은 별 흥미도 감동도 줄 수 없는 내용들이며 좀 심한 사람들에게는 우상숭배가 될 수 있기에 피하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하느님을 찾게 만들었다.

      

작가는 당시 무역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던 안트베르펜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고깃점을 생생히 묘사했다. 방금 도살한 듯한 싱싱하게 보이는 각종 날고기가 판매대에 넘치도록 가득 진열돼 있다.

 

여기 있는 고기들은 다 죽은 것들이지만 너무 싱싱해서 산 것으로 착각될 만큼 생명이 보이고 있다. 앞쪽 가운데 놓인 소머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세로로 쪼갠 돼지 몸통이 걸려있고 그 밑에는 절단된 살코기가 보인다. 한마디로 군침이 돌게 만드는 각종 고기가 펼쳐져서 미각과 시각적 차원에서 삶의 희열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소머리 바로 위에는 접시에 생선 두 마리가 십자형으로 포개져 있고 옆에는 소시지 더미가 늘어져 있다. 옆에서 갈비가 선명하게 보이는 고기 한쪽이 진열되어 있다. 그 위쪽 높이 걸린 가로대에는 돼지머리와 내장 등 부위별로 나뉜 고기들이 매달려있다. 훈제 제품의 모든 것이 구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풍요롭게 전시되어 있다.

 

그림에 묘사된 다양한 육류는 우리가 일용하는 평범한 식재료지만 이렇게 자세히 그려놓으니 군침이 돌면서도 마치 참혹한 전쟁으로 죽은 시체가 널부러진 전쟁터처럼 새삼 끔찍하게 여겨진다.

 

특히 잘린 소머리는 눈을 뜨고 있기에 삶의 실상 , 즉 살았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느끼게 만든다. 시편에 나타나고 있는 오늘은 내 차례요, 내일은 네 차례라는 죽음의 교훈을 설명하는 한편의 묵상 재료처럼 보인다.

 

고기는 도살의 결과물이므로 정육점은 죽음으로 살코기가 주는 생명감을 보이면서도 실은 죽음의 세계이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죽은 것이란 것의 실재이다

 

중세기 성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니타스(Vanitas)의 주제인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전통적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화란인들은 이 그림을 통해 단순히 정물화 형태의 즐거움이 아니라 신앙 차원에서 인생의 진실인 죽음에 눈뜨게 만들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가다듬을 수 있는 어떤 의미의 효과적인 묵상 재료로 사용했다

 

군침이 도는 이 고기들은 생명의 상징이 아니라 죽음의 상징임을 알리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 고기는 탐욕과 포식과 정욕과 같은 인간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것들의 모델이다.

 

복음의 정신대로 살아야 한다는 열망이 불타던 개신교도들에게 부패한 가톨릭 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보이는 악 표양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미각에 대한 지독한 탐식이었다.

 

신자들에게는 칠죄종으로 이것을 가르치면서도 자신들은 마치 치외법권 지역에 사는 사람들처럼 함부로 살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나 세상 군주들에 대해 대단한 반발을 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절제의 삶에 눈뜨게 만들었다.

 

작가는 작품에서 포도주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고급 식자재인 고기들을 푸짐히 진열한 푸줏간을 통해서 마음껏 먹고 마시자는 유혹에의 초대가 아니라 복음이 말하는 절대된 삶에 대한 강한 교훈을 주고자 했다.

 

당시 화란은 무역으로 상당한 경제적 수준에 이른 사회이기에 중산층과 상류층이 많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서민들의 삶의 정황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서민들의 삶을 주제로 한 풍경화들을 선호했는데, 이 작품 역시 세련되거나 정돈된 것과는 거리가 먼 시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육점을 통해 하느님께로 향해야 하는 인간 삶에서 피해야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어느 종교에서도 음식과 욕망의 절제가 영적 삶의 필수이며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타락한 삶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앙적 교훈과는 달리 어떤 화란인들은 이 작품을 통해 평소에 즐길 수 없는 음식에 대한 시각적 미각적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긍정적 차원의 식탁과 미식의 즐거움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신랑과 함께 있는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기쁨의 중요 요소는 맛 갈진 음식과 포도주가 준비된 잔칫상이며 주님께서는 이것을 하느님 나라의 기쁨으로 표현하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당신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단식을 하신 일과 선교활동을 하시면서 어떤 때 주위의 오해도 받을 만큼 자주 잔칫집에 들리면서 천국의 기쁨을 잔칫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는 바로 절제와 단식의 필요성과 세상에서 천국의 현존 체험이 잔치와 이어진다는 서로 상반되는 양면을 적절히 표현했다.

 

그러나 실재적으로 이 작품은 절제와 절식의 삶에 대한 교훈을 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며 당시 무역과 억척스러운 삶을 통해 칼빈의 사상에 따라 절제의 삶의 가치를 익힌 개신교도들에게 음식에 대한 절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재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탐식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의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Pieter aertsen_butchers stall2.jpg

  

화면 오른쪽 중간에 물을 긷고 있는 붉은 옷을 입은 푸줏간 주인은 바로 이 길드의 회원임을 알리고 있다.

 

중세기에 길드는 동업조합이며 이것은 단순한 상부상조의 기관이 아니라 신앙으로 결속된 현대의 신심단체 회원의 성격을 띠면서 자기들의 신앙심 고양과 사회봉사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제도는 신앙과 일상 직업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킬 수 있었던 좋은 제도였다.

 

그러나 이런 시장의 고깃집 풍경 묘사에서도 성서적인 내용에 대한 권고를 새기고 싶었던 당시 사람들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작가는 좀 어울리는 않는 성서적 내용을 하나 삽입했다.

 

Pieter aertsen_butchers stall1.jpg


고기들이 널린 진열대 저쪽 공간에 마태오 복음 216절에서 23절에 등장하고 있는 성가족의 이집트 피난에 대한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이 작품 주제인 음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작가는 신앙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마음에서 삽입한 것으로 보이며 더욱이 이상한 것은 나귀를 타고 가시는 성모님께서 어떤 걸인에게 보시를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또 성서의 내용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이집트 피난길에서 성모님이 걸인을 만났다는 기억은 전혀 없으나 절식은 단순한 자기 정화의 차원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돕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 설정을 좀 자연스럽지도 못하고 어색한 것이지만 음식의 절제를 통해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복음적 교훈의 전달로서는 좋은 것이다.

 

음식에 대한 절제의 권고는 어느 시대나 어떤 종교에서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영혼의 정화와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 중요한 것이란 가르침이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교회의 전통적인 단식은 예수님의 실천으로서 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너무나 중요한 것이며 이 작품의 작가처럼 좀 더 다양한 표현으로 음식의 영성을 제시했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 작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더 크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은 자연 파괴와 피조물 학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처지가 되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맡겼다는 말씀을 자연과 피조물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알아들으면서 세상의 파괴에 엄청난 역할을 했다.

 

자연 친화적이고 자연을 종속물이 아닌 피조물의 하나로 보는 불교적인 관점이 오히려 현대에 더 부각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 많은 고기를 먹고 미식을 즐기기 위해 저지르고 있는 동물 학대의 참상은 참으로 가련하다 못해 범죄의 수준이 되고 있다. 이런 무분별한 자연 파괴는 이제 기후 변화나 세상 전체의 재앙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작가가 중세기에 남긴 이 작품은 이제 자연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성 프란치스코처럼 모든 것을 하느님의 작품으로 여겨 학대나 탈취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존재로 살아야 함을 알린다는 면에서 현대 크리스챤들에게도 단순한 절제나 수덕의 차원이 아닌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좋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기폭제가 되리라 믿는다.

 

Pieter aertsen_butchers stall.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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