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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체 호모 사진.jpg


제목 : 이 사람을 보라 ! ( Ecce Homo 1655)
작가 :렘브란드 봔 리진 (Rembrandt van Rijin: 1597- 1664)

크기 : 동판화 35.8X 45.59cm

소재지: 네델란드 암스텔담 미술관

 

 

     성주간은 예수님 생애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마지막에 있었던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십자가의 죽음까지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시기이며 이것은 크리스챤 신앙의 핵심에 속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 주간을 성주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크리스챤 신앙의 핵심을 정리하고 묵상한다는 면에선 의미가 있는 표현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여러 기도나 신심행위로 표현하고 있는데, 많은 순간 핵심은 예수님의 고통 특히 그분이 겪어야 했던 신체적 고통이 대종이다.

 

십자가 형벌은 육체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었기에 로마 문화권에선 자국민들에게는 가하지 않고 이방인이나 특히 정치범처럼 사회적 경종을 준다는 목표에서 이 형벌을 사용했을 만큼 소름이 끼치는 형별이며 몇년 전 상영된 멜 깁슨 감독의 페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당시 유대인들의 형구를 적절히 사용해서 주님께서 겪으셨던 신체적 고통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는 이런 신체적 고통 못지않게 그분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심리적인 고통으로 모욕과 경멸을 들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체포되신 후 빌라도의 재판정에 서시면서 가장 먼저 당해야 했던 고통으로 전하고 있다.


성서는 이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만들었다군사들은 또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 그분께 다가가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하며 그분의 뺨을 쳐 댔다. 빌라도가 다시 나와 그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내가 저 사람을 여러분 앞으로 데리고 나오겠소. 내가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알라는 것이오.” 이윽고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셨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 이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보고,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목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 요한복음 191-7)

 

   작가는 이 내용을 작품화하면서 그가 개발한 판화 기법으로 작품을 처리했다. 판화는 여러 장을 복사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작품의 보급에 이점이 있었기에 작가는 성서적 내용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제작했으며 특히 이 주제에 집착해서 여러 다른 형태의 작품을 남겼는데 이것은 작가의 삶의 여정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작가는 색체의 마술사라 불릴 만큼 작품의 명암 처리를 극적으로 하면서 기량이 뛰어나자, 당시 무역과 상공업으로 큰 자산을 지닌 부자들이 많던 화란에서 유력 인사들과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초상화를 부탁하기 위해 줄을 서는 사태가 시작되면서 그는 짧은 시간 안에 사회적 명성과 재산이라는 두 토끼를 잡게 되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그는 당시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의 아내를 맞아들이게 되고 자녀들을 낳으면서 그는 안팎으로 행복한 사람의 모델이 되었다.

사회적 명망과 함께 안락한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참으로 어이없게도 그에게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넉넉한 가정 환경에서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던 그에게 화가로서 입지를 굳히면서 많은 돈이 들어오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는 낭비벽에 빠지게 되었다. 우선 그는 예술품을 수집한다는 일념으로 너무 계산없이 돈을 지출함으로서 경제적인 파탄이 시작되었다.

 

겹쳐서 사랑하는 아내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이 하나같이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마음엔 상처가 깃들었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죽고 그가 애지중지하던 아들 티투스도 젊은 시절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앞에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아내를 잃은 후 생긴 치정 사건으로 엄격한 칼빈파 윤리를 적용하던 화란 사회에서 지녀야 할 명성도 잃었다.

 

드디어 그는 1656는에 재산 파산선고를 받음으로서 재기의 희망이 없는 인생을 살다가 1669년 성경 한권을 달랑 남긴채 가난한 유태인들의 주거지에서 인생을 마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이런 몰락기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작가가 자기 인생의 몰락기에 겪어야 했던 후회와 절망과 분노를 주님의 삶과 연관시킨 것이 바로 이 작품이며 그가 일생을 신앙에 천작하며 만난 예수 중 모욕과 경멸을 받으시는 예수님이 그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위로를 준 것이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결과적으로 바로 작가의 모습과 비슷하다. 주님은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모욕과 경멸을 당했다는 것이나 작가는 자기의 불운과 개인적 실수로 당한 것이긴 해도 그의 인생 전체가 무너졌다는 면에선 예수님을 닮았다.


엑체호모 사진2.jpg


 

     빌라도와 함께 재판정에 끌려 나온 예수님은 성난 군중을 향해 서 있다. 빌라도 총독과 예수님 사이엔 당시 폭도로서 큰 문제를 일으켰던 바라바가 대머리의 험상궂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는 예수께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지닌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들에 의해 예수를 대신해서 사면된 인간이다.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고 계시며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놓아 포승에 묶인 모습으로 서 계신다. 예수님은 나신은 아니지만 당시 풍습으로는 단정치 않는 모습, 즉 채칙질과 모욕을 당한 사람의 흐트러진 모습으로 서 계신다.

 

그러나 표정은 너무 담담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담담하신지 아니면 상황파악을 못하셔서 담담하신지 그것을 수용하는 모습으로 계신다. 그는 이해를 받기보다는 오해를 받아야 했다.

 

유대인들을 구원할 영적인 지도자로서 사명으로 산 그에게 율사들은 유대 사회를 전복시킬 정치적 지도자의 오명을 씌워 결국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세상에 오해는 어느 시대나 어느 집단에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과 상반되거나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희생양을 만드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라 생각하며 이런 면에서 이들은 항상 자기들의 이익이나 신념에 맞게 만든 하느님의 권위를 최고로 내세우기에 더 악랄하고 교활할 수 있음이 역사의 교훈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유대인들에게 대사제 가이파가 제시했던 논리는 대단한 설득력을 지니면서 오늘까지 종교의 영역 뿐 아니라 세상 안에서 참으로 폭넓게 시도되고 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체포하여 제거하기 위해 여러 묘안을 짜내었으나 군중들의 신뢰가 주님 주위를 감싸고 있기에 민심 동요가 두려워 주저하고 있던 사이 좋은 묘안이 나오게 된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직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11; 49- 50)

 

가야파의 이 논리는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교회 안에서 악한 힘이 선한 힘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을 세울 때 가장 설득력 있는 제시가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도 제도화되고 나면 항상 기득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자기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카이파의 논리로 대함으로서 교회의 위상에 큰 불명예를 끼쳤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태리 중부 카세르타 지역을 사목 방문하시면서 그 지역에서 사목하고 있는 오순절 교파 계통의 목사를 동반하셨는데, 교황님은 미사 중 뭇솔리니 독재 정권 시절 이 지역에서 있었던 이 교파 신자들의 박해에 가톨릭 교회도 관여하셨음을 인정하고 사과의 말씀을 남겼다.

 

참으로 현대 교회가 보이고 있는 신선한 증거인데 아직도 교회 안에는 이런 관행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뜻을 따랐기에 경멸을 당하고 해고지를 당해야 했다.

 

그는 순수한 태도로 자기의 도움이 필요한 인간들을 사랑한 것이 숱한 질시와 모함과 오해의 원인이 될 수 있었는지는 오늘의 현실을 바로보면 이해 할 수 있다.

 

   몇 년전 작고하신 미국 시카코의 버나드 추기경은 생전 어떤 젊은이로부터 성추행으로 고발당했다. 그런데 이 고발을 사주한 사람이 놀랍게도 바로 추기경을 싦어하던 성직자였다. 이 성직자는 그 젊은이에게 추기경을 모함하면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 돈을 받게 된다는 것을 사주함으로서 이 슬픈 악마적 모략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그 젊은이는 죽음의 순간에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고 고백한 후 추기경의 기도 속에서 하느님께로 갈 수 있었다.

 

   작가는 암스텔담 사회의 명사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잃은 빈털터리로 추락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으나 그에게 있던 신앙의 불씨가 더 뜨겁고 순수하게 타오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실수와 불운을 신앙 정화의 긍정적인 차원으로 처리해서 영적 삶의 상승 요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 성서 한권을 남겼다. 그 많던 재산과 명성 가정의 행복을 다 잃으면서 그가 남긴 것이 성서 한권이고 그는 참으로 바로 경건한 개신교 신자답게 성서를 남겼다.

 

성서를 남겼다는 것은 그는 성 바오로의 말씀처럼 주님만이 자기 삶의 모든 것임을 증거한 어떤 의미의 신앙의 풍요로움을 볼 수 있다.

 

엑체 호모 사진.jpg


     작가는 이 재판정을 당시 화란 사회에 분위기에 어울리게 표현했다. 당시 화란에서는 많은 재판, 특히 국민들에게 경종을 주기 위한 재판은 건물 입구에서 하는 풍습이 있었기에 높은 단위에 예수님이 서 계시고 야유하는 군중들이 아래에 있는 것은 화란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어서 예수님의 수난 사건이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올 수 있었다.

   

크리스챤 신앙의 정점을 말할 때 우리는 너무 자주 순교 신앙을 언급하는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순교라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하지만 현실적 체험이 되지 못한 가상이나 마음속의 신심이 되기 쉽다.

 

그러나 모욕과 경멸은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노력할 때 많은 경우 현실로 닥치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두렵기에 신앙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변두리를 맴도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얼마나 정의를 외치지면 교회안에 정의에 대해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현실을 바로 이점의 좋은 증거가 된다. 교회 안에서 바른 말이나 바른 처신을 했다간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침묵하거나 피하는 것이 오히려 호신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반대급부로 사회에 정의에 대해 격렬한 표현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 자기의 치부를 숨기기 위한 반대급부 차원의 위선적 행동으로도 볼 수 있다.

 

작가는 자기 처신이 예수님과 비길 수 없이 인간적 실수나 지혜 부족에 연루한 것임을 알았으나, 예수님이 보이신 경멸과 모욕을 자기 죄값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는 차원에서 받아들인 것은 크리스챤 신앙의 높은 경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의인의 믿음이 아니라 죄인의 믿음이 더 하느님께 가납된다는 믿음을 그는 실천했다는 면에서 이 작품은 참으로 크리스챤 신앙의 높은 경지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우리는 뿌리 없는 신앙, 바탕이 없는 신앙일수록 그럴듯한 말장난으로 이어지면서 삶의 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연기처럼 허망하게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의 이 표현은 작가 자신의 정직한 신앙 표현일 수 있기에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예수를 야유하기 위해 모든 군중 가운에 넣음으로써 자기의 죄로 인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내 탓이요 신앙을 정직하게 표현했다.

   

   성주간을 시작하는 성지 주일 교회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주님의 모습을 바라 보라고 초대하고 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이사야 50, 5- 6)

 

누가 신앙에 입문하면서 이런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까?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신앙에는 어떤 때 이것이 필수라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품이 주는 교훈이다.

 

순교신앙의 일방적 도취속에 살다보면 놓치지 쉬운 예수의 제자로서 겪어야 할 중요한 가치를 작가는 자신의 인간적인 실수와 불운으로 시작된 그의 불행을 통해 표현한 것은 부활 성야 찬송에서 부르는 복된 탓( Felix culpa)의 감동적 표현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이런 인생의 어려운 시기의 작품을 통해 신앙의 높은 경지를 표현할 수 있었고 이것은 그의 작품이 개신교와 가톨릭의 벽을 허물고 20세기 프랑스 가톨릭 화가인 죠르죠 루오와 함께 그리스챤 예술가로서 쌍벽을 이루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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