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일 부활 제4주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양들을 돌보는 목자의 모습으로 비유합니다. 우리 또한 주님처럼 양들을 잘 돌보는 참되고 착한 목자로 초대 받고 있습니다.
목자와 양떼의 모습은 “떠돌며 사는 아람인"(신명 26,5)으로서 목축생활을 한 이스라엘 조상들의 마음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자라는 비유를 통해서 인간 사회에서 행사하게 되는 권위의 두 가지 측면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목자는 양떼의 주인이며 동시에 동반자입니다. 목자는 야수로부터 양 떼를 지키는 힘을 가진 강한 사람인가 하면(마태 10,16; 사도 20,29),양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 그들의 사정을 숙지하고 온갖 조치를 다하여(창세 33,13-14) 약한 양들을 안아 주고(이사 40,11) 모든 양들을 자기 딸처럼 사랑합니다(2사무 12,3). 목자의 권위에 대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데,이는 헌신과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빌론과 아시리아 같은 고대 근동제국의 왕들은 신으로부터 양떼를 모으고 돌보는 일을 위탁받은 목자로 자처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성서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리자가 보여 주는 목자상을 통해서 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착한 목자에 대한 희망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됩니다. 그분은 왕 또는 무리의 주님으로서 군림하시는 목자라기 보다도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참된 목자상을 지니고 계십니다. 주님은 유일한 중개자이시며, 양 우리의 문이며(요한 10,7),양이 풀밭을 찾아 들어가는 문{요한 10,9-10)이십니다. 그분만이 양을 다스릴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으며(요한 21,15-17), 그분만이 양들을 자유로이 우리에 드나들어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민수 27,17). 목자와 양들 사이의 상호 인식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을 결합하는 서로간의 사랑을 기반으로 새로운 인간 존재가 형성됩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시기 때문에 완전한 목자이십니다(요한 10,15-18). 흩어진 양들은 그분의 목숨을 내놓는 완전한 사랑으로 양들을 한 무리에 모이기 하여 서로간에 영원히 일치를 이루게 합니다.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양들의 생활을 유지시키고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0,27-30).
이 시대는 무엇보다도 주님을 온전히 닮은 참된 목자가 필요합니다. 참된 목자가 영혼에 그리고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가를 다음의 성 프란치스코의 일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창설한 형제회 수도회가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할 때 다음과 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형제회의 목자로서 그대를 세우지 아니하였던가? 그런데도 그대는 내가 이 형제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내가 그들을 불렀고, 내가 지킬 것이고, 내가 키울 것이다. 그리고 떨어져나간 자들을 보충하기 위하여 다른 이들을 뽑을 것이다. 만약 충당할 인원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내가 그들을 태어나게 하겠다…비록 형제회의 숫자가 셋으로 감소한다 해도 형제회는 나의 은총으로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그때부터 프란치스꼬는 무수히 많은 형제들의 불완전함이 단 한명의 성인의 덕행으로 극복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그 덕행은 주님으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바로 주님의 입과 손과 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목자로서의 일은 나의 계획과 나의 원의로 하는 것이 아니나 그분의 섭리와 계획안에서 실행되고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는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고 도미니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