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는 몰아내야 하지만 권위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권위가 있는 사람과 권위주의자는 어떻게 다릅니까?
쉽게 얘기해서 권위주의는
권위를 고집하고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권위를 고집하고 집착합니까?
그것은 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권위가 있는 사람은 굳이 권위를 집착하지 않음은 물론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권위주의자는 권위가 없기에 권위에 집착하고
권위를 가지고 권세를 부리려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힘입니다.
힘이 없으면 그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또한 힘 숭배자들입니다.
권력으로 재력을 얻고,
재력으로 인력(man power)을 사고,
인력으로 능력을 극대화하고,
이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권세를 유지하고 권위를 행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자는 권세를 부리지 않고
권위를 행사하지도 않습니다.
권위의 근본은 힘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권위를 행사하지 않고 진리를 실천할 뿐이고
진리를 말함으로써 그의 권위가 드러날 뿐입니다.
그는 힘을 숭배하지 않고 사랑을 받들며
사랑을 받들기에 겸손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권위는 진리와 겸손과 사랑의 권위였음은 말할 것도 없고
거룩함의 권위였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악마마저도 예수님의 이런 권위를 인정합니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악마마저도 하느님의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래서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하고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분은 하느님뿐이고
거룩함은 하느님에게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권위는 진리와 겸손과 사랑에 있어서 뛰어난,
한 인간으로서의 권위 정도가 아닙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하느님에게서 오는 권위입니다.
그런 진리,
그런 겸손,
그런 사랑의 권위입니다.
우리도 그런 권위를 지닐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첼레노의 프란치스코 전기를 보면
첼라노는 프란치스코를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지칭합니다.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을 본받아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그런 권위를 지녔다면
똑같지는 않아도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그만큼
우리도 그런 권위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권위가 있는 사람과 권위주의자는 어떻게 다릅니까?
쉽게 얘기해서 권위주의는
권위를 고집하고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권위를 고집하고 집착합니까?
그것은 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권위가 있는 사람은 굳이 권위를 집착하지 않음은 물론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권위주의자는 권위가 없기에 권위에 집착하고
권위를 가지고 권세를 부리려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힘입니다.
힘이 없으면 그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또한 힘 숭배자들입니다.
권력으로 재력을 얻고,
재력으로 인력(man power)을 사고,
인력으로 능력을 극대화하고,
이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권세를 유지하고 권위를 행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자는 권세를 부리지 않고
권위를 행사하지도 않습니다.
권위의 근본은 힘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권위를 행사하지 않고 진리를 실천할 뿐이고
진리를 말함으로써 그의 권위가 드러날 뿐입니다.
그는 힘을 숭배하지 않고 사랑을 받들며
사랑을 받들기에 겸손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권위는 진리와 겸손과 사랑의 권위였음은 말할 것도 없고
거룩함의 권위였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악마마저도 예수님의 이런 권위를 인정합니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악마마저도 하느님의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래서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하고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분은 하느님뿐이고
거룩함은 하느님에게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권위는 진리와 겸손과 사랑에 있어서 뛰어난,
한 인간으로서의 권위 정도가 아닙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하느님에게서 오는 권위입니다.
그런 진리,
그런 겸손,
그런 사랑의 권위입니다.
우리도 그런 권위를 지닐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첼레노의 프란치스코 전기를 보면
첼라노는 프란치스코를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지칭합니다.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을 본받아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그런 권위를 지녔다면
똑같지는 않아도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그만큼
우리도 그런 권위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무기 없이 사로잡는 것이 사랑이다.“는 말처럼
순수한 사랑만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살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바라보는 아픔이 있네요.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을 본받아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그런 권위를 지녔다면
똑같지는 않아도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그만큼
우리도 그런 권위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에 희망을 걸고
오늘을 살도록 마음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