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하는 사람들인가?”라는 4권으로 된 교리서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박도식 신부님께서 지으신 책인데요.
제가 처음으로 읽었던 교리서였습니다.
책을 읽은 것이 20년 가까이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여기 어르신들 많은데 죄송합니다.)
박신부와 송군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 가운데에
송군에 나와 하느님의 관계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박신부의 대답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 이유와 목적이 있다.
목수가 책상을 만들 때, 책상은 그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사람 또한 그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려하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사무엘처럼 직접 이름을 불러주시면 좋으련만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그 뜻을 명확히 알고,
사람들의 간절한 청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파라는 자신의 길을 떠나시는데,
세상의 흐름에 내 맡겨진 채, 그 거대한 시류에 몸을 띄운 채,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둥둥 떠다니는 제 자신의 모습에서
제가 얼마나 귀 기울이지 않았는지, 제게 얼마나 바라봄이 없었는지 생각해봅니다.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의 소리에서 벗어나, 세상의 근심과 걱정은 잠시 뒤로 미루어 놓고,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하나 정성껏 창조하신 분께서
분명 우리 하나하나에게 맡겨주신 당신의 일이 무엇인지
우리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무엘처럼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예수님처럼 꿋꿋이 하느님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돌아가신 박도식 신부님께서 지으신 책인데요.
제가 처음으로 읽었던 교리서였습니다.
책을 읽은 것이 20년 가까이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여기 어르신들 많은데 죄송합니다.)
박신부와 송군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 가운데에
송군에 나와 하느님의 관계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박신부의 대답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 이유와 목적이 있다.
목수가 책상을 만들 때, 책상은 그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사람 또한 그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려하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사무엘처럼 직접 이름을 불러주시면 좋으련만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그 뜻을 명확히 알고,
사람들의 간절한 청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파라는 자신의 길을 떠나시는데,
세상의 흐름에 내 맡겨진 채, 그 거대한 시류에 몸을 띄운 채,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둥둥 떠다니는 제 자신의 모습에서
제가 얼마나 귀 기울이지 않았는지, 제게 얼마나 바라봄이 없었는지 생각해봅니다.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의 소리에서 벗어나, 세상의 근심과 걱정은 잠시 뒤로 미루어 놓고,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하나 정성껏 창조하신 분께서
분명 우리 하나하나에게 맡겨주신 당신의 일이 무엇인지
우리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무엘처럼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예수님처럼 꿋꿋이 하느님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창조원의 안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을...
인간만이 역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삶인지도 모르죠...
피조물로 여기고 그 피조물의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