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잘 살려면 삶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늘어나야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야 할 삶의 지혜란
신 김치를 버리지 않고 먹는, 그런 살림의 지혜도 있지만
그보다는 삶을 성공적으로 사는,
적어도 실패하지 않고 사는 지혜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는 이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삶의 지혜 중 하나는 큰 문제를 잘 해결할 줄 아는 것입니다.
저의 인생 경험에서 깨달은 것은 “그 까짓것”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생각하며 끙끙댑니다.
“이거 큰 문제야!”하는 순간,
그는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이미 그가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로 커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커지면서 더불어 문제도 커진 것입니다.
우리는 군대에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보초를 설 때 무슨 소리가 나 그것을 두려움 가운데 보고 있으면
점점 그 물체가 커지고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어른들이 도깨비와 밤새 싸웠는데
아침에 깨어보면 빗자루와 밤새 씨름을 했다는 얘기와 같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독서의 다윗처럼 큰 문제도 “까짓 것”하며
작은 문제로 만들어버려야 합니다.
실상 큰 문제들이라고 하는 것들이 죽는 것보다 큰 문제없고
죽는 것은 또한 사는 것보다 큰 문제가 아니니
그 무엇을 가지고 우리가 한 숨 푹푹 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더 더군다나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계시기에 안 되는 것 없이 되는 것만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오그라든 손도 펴실 것이고
죽어가는 것도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문제가 있어도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믿음을 갖고 희망을 보며 삶을 사랑합니다.
삶의 두 번째 지혜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참사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관구의 문제들을 보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합니다.
그런데 종종 문제가 골리앗처럼 커 보이고
그래서 도저히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가 너무 커 보여 미래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힘만으로 그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면
그 까짓 것들 아무 것도 아니고 희망이 있습니다.
문제들 해결할 수 있고
희망의 싹들은 많습니다.
그러므로 참사회의를 하는 우리
실망과 절망의 싹은 자르고 희망의 싹을 틔우며,
부정의 힘은 누르고 긍정의 힘은 키우며,
죽음의 문화는 죽여 버리고 긍정의 문화를 살리며,
우리의 삶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합시다.
미워하지 않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낫듯이
문제에 더 많이 매달리기보다 우리의 가능성들을 더 많이 보는,
그런 긍정과 창의와 열정의 참사회의가 되기를 이 아침 기도합시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늘어나야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야 할 삶의 지혜란
신 김치를 버리지 않고 먹는, 그런 살림의 지혜도 있지만
그보다는 삶을 성공적으로 사는,
적어도 실패하지 않고 사는 지혜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는 이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삶의 지혜 중 하나는 큰 문제를 잘 해결할 줄 아는 것입니다.
저의 인생 경험에서 깨달은 것은 “그 까짓것”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생각하며 끙끙댑니다.
“이거 큰 문제야!”하는 순간,
그는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이미 그가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로 커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커지면서 더불어 문제도 커진 것입니다.
우리는 군대에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보초를 설 때 무슨 소리가 나 그것을 두려움 가운데 보고 있으면
점점 그 물체가 커지고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어른들이 도깨비와 밤새 싸웠는데
아침에 깨어보면 빗자루와 밤새 씨름을 했다는 얘기와 같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독서의 다윗처럼 큰 문제도 “까짓 것”하며
작은 문제로 만들어버려야 합니다.
실상 큰 문제들이라고 하는 것들이 죽는 것보다 큰 문제없고
죽는 것은 또한 사는 것보다 큰 문제가 아니니
그 무엇을 가지고 우리가 한 숨 푹푹 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더 더군다나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계시기에 안 되는 것 없이 되는 것만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오그라든 손도 펴실 것이고
죽어가는 것도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문제가 있어도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믿음을 갖고 희망을 보며 삶을 사랑합니다.
삶의 두 번째 지혜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참사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관구의 문제들을 보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합니다.
그런데 종종 문제가 골리앗처럼 커 보이고
그래서 도저히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가 너무 커 보여 미래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힘만으로 그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면
그 까짓 것들 아무 것도 아니고 희망이 있습니다.
문제들 해결할 수 있고
희망의 싹들은 많습니다.
그러므로 참사회의를 하는 우리
실망과 절망의 싹은 자르고 희망의 싹을 틔우며,
부정의 힘은 누르고 긍정의 힘은 키우며,
죽음의 문화는 죽여 버리고 긍정의 문화를 살리며,
우리의 삶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합시다.
미워하지 않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낫듯이
문제에 더 많이 매달리기보다 우리의 가능성들을 더 많이 보는,
그런 긍정과 창의와 열정의 참사회의가 되기를 이 아침 기도합시다.
부정의 힘은 누르고 긍정의 힘은 키우며,
죽음의 문화는 버리고 긍정의 문화를 살리며,
우리의 삶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며
문제에 매달리기보다 우리의 가능성들을 더 많이 보는,
긍정과 창의와 열정의 참사회의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그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관심있게 한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면
어느날 그가 정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사람임을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된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아니 우리 모두는
참으로 특별한 사람들 아닐까요.
그분 눈빛이기에 가능성을 더 많이 보는
그래서 열린 긍정과 밝은 창의와 따뜻한 열정으로
이 시대적 징표를 모든이에게 알려주는
빛과 소금으로 영그는 희망을
회의에서 의논해주시기를 기도드려요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하나 되는 참사회의가 되도록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