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면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 커진다.”
지난 참사회의에서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패배주의를 경계해야한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저의 이 말을 보완하여 한 형제가 승리주의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패배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얘기할 때
제가 승리주의를 얘기하고자 한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그 형제의 현명한 지적처럼 승리주의도 우리는 경계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승리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신앙을 빙자하여 승리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제 강론 끝에 저는 우리의 작은 것을 가지고
하느님께서는 거기에 보태어 크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했는데,
내가 또는 나의 작은 것이 커지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커지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하느님 나라가 커지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의 나라가 커지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크게 하신다고도 말씀하십니다.
나의 나라가 커지기를 바라서도 안 되지만
하느님 나라를 내가 키울 수 있다는 교만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씨,
그것도 지극히 작은 겨자씨를 뿌리지만
어떻게 그 씨앗에서 줄기와 이삭이 나오고 이삭이 영그는지를
그 사람은 모르고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땅은 대지의 하느님이시지요.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겨자씨 같은 우리,
겨자씨 같은 우리 능력과 정성과 노력을 가지고
하느님 나라를 크게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작음을 없이 여기지 않으십니다.
작아도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니
있는 것을 없이 여기지 않으시고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꽤 괜찮은 사람도 깎아내려 쓸모없다고 무시하는데,
하느님은 어찌하여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시고 크게 만드십니까?
물론 작은 것일지라도 사랑하시기 때문이지만
하느님은 작은 것도 크게 만드실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것도 작다고 탓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사랑도 크시고 능력도 크시기에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십니다.
지혜서의 말씀대로입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11, 23-26)
그래서 오늘 이 아침 기도합니다.
“주님 저에게 당신의 큰 사랑과 능력을 주소서!
내가 커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자녀들이 커지도록,
그래서 당신의 나라가 커지도록
저의 사랑과 능력이 당신의 사랑과 능력만큼 되도록
겨자씨 같은 저의 작은 사랑과 능력을 먼저 키우소서!”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면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 커진다.”
지난 참사회의에서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패배주의를 경계해야한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저의 이 말을 보완하여 한 형제가 승리주의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패배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얘기할 때
제가 승리주의를 얘기하고자 한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그 형제의 현명한 지적처럼 승리주의도 우리는 경계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승리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신앙을 빙자하여 승리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제 강론 끝에 저는 우리의 작은 것을 가지고
하느님께서는 거기에 보태어 크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했는데,
내가 또는 나의 작은 것이 커지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커지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하느님 나라가 커지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의 나라가 커지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크게 하신다고도 말씀하십니다.
나의 나라가 커지기를 바라서도 안 되지만
하느님 나라를 내가 키울 수 있다는 교만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씨,
그것도 지극히 작은 겨자씨를 뿌리지만
어떻게 그 씨앗에서 줄기와 이삭이 나오고 이삭이 영그는지를
그 사람은 모르고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땅은 대지의 하느님이시지요.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겨자씨 같은 우리,
겨자씨 같은 우리 능력과 정성과 노력을 가지고
하느님 나라를 크게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작음을 없이 여기지 않으십니다.
작아도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니
있는 것을 없이 여기지 않으시고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꽤 괜찮은 사람도 깎아내려 쓸모없다고 무시하는데,
하느님은 어찌하여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시고 크게 만드십니까?
물론 작은 것일지라도 사랑하시기 때문이지만
하느님은 작은 것도 크게 만드실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것도 작다고 탓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사랑도 크시고 능력도 크시기에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십니다.
지혜서의 말씀대로입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11, 23-26)
그래서 오늘 이 아침 기도합니다.
“주님 저에게 당신의 큰 사랑과 능력을 주소서!
내가 커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자녀들이 커지도록,
그래서 당신의 나라가 커지도록
저의 사랑과 능력이 당신의 사랑과 능력만큼 되도록
겨자씨 같은 저의 작은 사랑과 능력을 먼저 키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