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큰사람과 작은사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큰사람이 허우대가 큰사람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자가 되려는 프란치스칸이 경계하는 그런 큰사람도 아닐 겁니다.
우리 프란치스칸이 얘기하는 작은자는 세상에서 작은자라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큰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큰사람이겠지요.
실제로 복음 다른 곳에서 주님께서는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루카 7,28)
그러나 이 세상에서도 큰 인물은 좋은 뜻입니다.
특히 소인배와 반대되는 뜻일 때 좋은 뜻입니다.
소인배란 도량이 작고 간사한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도
우리에겐 즉시 목전의 작은 이익에 눈 먼 나쁜 사람이 떠오르는데
그렇다면 대인배, 큰 인물은 인장지덕목장지폐人長之德木長之弊,
곧 나무는 큰 나무 밑에 있으면 폐해만 입지만
사람은 큰사람 밑에 있으면 덕을 본다는 말이 있듯이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고,
공동선을 위해 자기의 이익쯤은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누구 덕분에 잘먹었다고 할 때처럼 덕이 많은 사람은
덕이 많기에 덕분德分할 수, 곧 덕을 나누어줄 수 있으며,
그러므로 큰사람은 덕이 많아 덕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서 큰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인장지덕이나 진배없습니까?
덕중에서 애덕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에서는 진배없을 것입니다.
율법 학자가 주님께 와 율법에서 첫째가는 계명에 대해 물었을 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답하시는데
마태오복음에서만은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는 말씀을 굳이 덧붙이십니다.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쓴 마태오복음은 율법이란
본래 사랑의 계명이라는 해석을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주님도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거나
율법을 잘 지키고 가르치는 사람은 큰 사람이라는 오늘 복음도
다른 복음에는 없고 마태오복음에만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은
율법을 하느님의 뜻, 곧 율법의 정신에 따라 지키는 것이며,
율법을 스스로 잘 지킬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까지 한다면
그런 사람은 큰사람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 시점에서 소인배와 대인배를 생각해봅니다.
어제 수녀원 미사를 오면서 안양천을 걸어왔는데 엄청 더웠지요.
그 더위에도 대다수가 마스크를 충실히 쓰고 걷고 있는데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젊은 사람들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나는 건강하니까 옮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자신은 건강해도 남을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실 랑만큼 배려하는 법이고,
사랑이 큰만큼 작은 것까지 배려하는데 대인배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소인배는 남을 위한 배려가 없음은 물론 고려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 안에 자기밖에 없는 사람은 작은 사람이고,
자기말고 수많은 사람이 있는 사람이 큰사람임을 성찰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소유의 순서)
http://www.ofmkorea.org/227704
17년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자유가 사랑이 될 때)
http://www.ofmkorea.org/105388
15년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하느님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하셨다)
http://www.ofmkorea.org/78831
13년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정신이 있는 법, 영이 깃든 법)
http://www.ofmkorea.org/54171
09년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우리는 성령의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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