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기도할 땐 이미 원수가 아니다.
오늘 강론은 어제 강론을 읽고 읽으면 이해가 더 풍성하겠습니다.
그것은 오늘 복음이 어제 복음과 이어져 있고,
당연히 오늘 강론도 어제 강론과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어제 강론 끝에 원수까지 사랑하면 아예 악인이 없다고 했는데
이것을 이어서 얘기하면 원수를 위해 기도하면 그는 이미 원수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함께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라는 말씀과 기도하라는 말씀이 동의어인 것이고,
기도하지 않고 원수 사랑 할 수 없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원수란 기도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원수 때문에 기도한다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잘 되게 해달라는 뜻으로 기도해 줄 수는 도저히 없지요.
그러니 원수나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는
원수나 박해자도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려는
의지와 열망이 먼저 내게 있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만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것을 훌쩍 뛰어넘는,
그런 내가 되는 것, 이 얼마나 완전하고 멋집니까?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완전이란 바로 이런 것이고,
이런 완전하고 멋진 내가 되려는 열망이 있는 사람이라야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원수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시작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꾸준히 계속해 가면 나의 사랑이 완전해지고,
원수 사랑도 완성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 사랑에 물줄기를 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느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와
하느님 사랑이 내 안에 고이게 되겠지요.
우리는 청원기도를 많이 하고, 보통 돈이나 건강을 청원하는데
원수와 박해자를 위해 기도할 땐 하느님의 사랑을 청원하는 거지요.
그러니 원수와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사실은
원수와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까짓 돈 달라는 청원보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그 완전한 사랑을 달라고 청원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내가 되게 해달라는 청원이 최고의 청원이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오늘 저의 강론이 낭만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러나 낭만적일 수 없는,
사실 무척 고통스럽고 절실한 몸부림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우리가 남보다 잘해야 할 것?)
http://www.ofmkorea.org/229881
18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하느님 사랑의 중매인 우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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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원수에게 나의 행복을 바란 불행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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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이 내 원수와 오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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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사랑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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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사람에게만 원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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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참으로 자중자애, 자만자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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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완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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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사랑의 의지, 원수 사랑의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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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더"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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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사랑 단상<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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