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동안 3주에 걸쳐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대한 말씀을 요한복음 6장에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6장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적인 음식,
바로 당신의 살과 피를 구하고 먹으라 하십니다.
이에 사람들은 오늘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하며 투덜거립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영은 생명을 주지만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하십니다.
그런데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시는데 너무 심한 말이 아닙니까?
정말 육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인가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은 육이 꼭 필요하고 쓸모가 있지요.
그렇다면, 육이 쓸모가 없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차원에서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차원에서는 죽고 나면 곧 썩어버리고 마는 것이 육이지요.
저는 실제로 인간의 육신이 얼마나 덧없이 재가 되고 마는지 보았습니다.
제가 저희 수도회 책임을 맡고 있을 때 수사님이 돌아가셔서 화장할 때
마치 절의 스님들 다비식 때처럼
저희 수사님의 시신이 불에 타 재가 되는 과정을 제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두 시간도 안 되어 재가 되는데 이것이 우리의 육신이고
이것이 이 세상 삶임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듯이
영이야말로 생명을 주는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은 어떤 것입니까?
한 마디로 얘기하면 하느님 아버지의 숨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코에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아담에게 목숨을 불어넣으십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숨을 우리가 쉬므로
우리의 목숨이 되신 아버지 하느님의 숨입니다.
그리고 영은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숨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성령체험을 하고,
부활을 체험합니다.
이처럼 영은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숨입니다.
이 숨을 지닌 것이 목숨이고 이 숨을 들이마셔야만 우리 목숨은 유지됩니다.
이 우리말 목숨의 한자어가 생명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영이며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 자신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참 말씀이십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한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신 것입니다.
“생겨라!”하고 명하자 생겨난 것이 생명입니다.
생기라는 명령,
생기라는 말씀대로 된 것이 생명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주님의 명령에 순명할 때만 생명을 부지하고
말씀대로 따를 때에만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우리를 대표하여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