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소작인.
아들과 소작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들은 주인과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는 존재이지만
소작인은 주인과 이해타산적인 관계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소유권이 있지만 소작인은 소유권이 없고
주인이 주지 않으면 땅 한 뙤기도 소유할 수 없는 가난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소작인은 자기의 가난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고
소유하기 위해서는 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어린 아기는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엄마가 ‘기도 손’하면 기도하는 자세로 손을 모읍니다.
기도가 무언지 모르지만,
머리로는 하느님을 모르지만,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 하느님을 알고 그래서 경건해집니다.
경건은 결코, 절대로 머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아기는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엄마가 ‘주세요 손’하면 ‘기도 손’은 ‘주세요 손’으로 바뀝니다.
그 ‘주세요 손’을 보고 안 줄 엄마 아무도 없습니다.
어린 아기의 청원 기도이지요.
움켜쥐는 탐욕스런 손이 아니라 가난한 손으로,
결코 강짜가 아닌 완전한 겸손으로 청원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비유를 드신 소작인들은 아주 고약합니다.
주인의 땅을 강탈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탐욕으로는 결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강탈에 의해서는 하느님 나라를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가난과 겸손만이 하느님의 자비를 얻고
하느님 자비만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 상속자가 되게 합니다.
아들과 소작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들은 주인과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는 존재이지만
소작인은 주인과 이해타산적인 관계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소유권이 있지만 소작인은 소유권이 없고
주인이 주지 않으면 땅 한 뙤기도 소유할 수 없는 가난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소작인은 자기의 가난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고
소유하기 위해서는 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어린 아기는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엄마가 ‘기도 손’하면 기도하는 자세로 손을 모읍니다.
기도가 무언지 모르지만,
머리로는 하느님을 모르지만,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 하느님을 알고 그래서 경건해집니다.
경건은 결코, 절대로 머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아기는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엄마가 ‘주세요 손’하면 ‘기도 손’은 ‘주세요 손’으로 바뀝니다.
그 ‘주세요 손’을 보고 안 줄 엄마 아무도 없습니다.
어린 아기의 청원 기도이지요.
움켜쥐는 탐욕스런 손이 아니라 가난한 손으로,
결코 강짜가 아닌 완전한 겸손으로 청원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비유를 드신 소작인들은 아주 고약합니다.
주인의 땅을 강탈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탐욕으로는 결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강탈에 의해서는 하느님 나라를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가난과 겸손만이 하느님의 자비를 얻고
하느님 자비만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 상속자가 되게 합니다.
가난과 겸손...이것을 기억해야 함을 다시 새기겠습니다.
우리의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