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코린토서의 말씀은 광야에서 하느님께 불평을 하다가
벌을 받아 불뱀에 물려죽은 이스라엘 백성의 얘기가 배경입니다.
오늘 코린토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는 길을 알려 주시고 손수 인도자가 되시었으며,
손수 양식과 음료를 주셨음에도 백성들은 불평불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잘 해줘도 불만인 것이지요.
사실 많은 경우 잘 해주면 오히려 불만이 늘어납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그것은 잘 해 주면 그것으로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해 주면 잘 해 줄수록 만족의 파이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만족이란 무엇입니까?
그릇으로 치자면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고
욕망으로 치자면 욕망이라는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지요.
그런데 욕망이라는 그릇이 더 커지면
지금까지의 만족이 불만으로 바뀌겠지요.
그러므로 만족의 비결은 만족의 파이를 줄이는 것이요,
욕망의 그릇을 최대한 작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적으로 말하면 가난입니다.
아예 허접스런 욕구들은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군대에 가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사람들의 불만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군대에 가니까 첫날부터 사람을 개돼지취급을 하며
정말로 죽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두들겨 패는 것은 기본이고 갖가지 야만적인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이런 것을 통하여
인간적인 대우는 아예 받을 생각은 아예 거두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밥 한 숟가락만 더 먹어도 그리 기분이 좋고
오늘 하루 맞지 않고 잠드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도원 청원자들을 양성할 때도 같은 방식을 썼습니다.
수도원 들어오기 전에 다들 편하게 살다가 들어오는데
각오는 하고 들어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려는 관성이 남아 있지요.
그래서 제가 쓰는 방법 중의 하나가 2월 달 입회인데
그 한 겨울 추위에 거의 보일러를 때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불교에서 혹독한 행자시절을 보내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뱀으로 벌을 내리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점점 늘어나는 요구와 그에 따른 불만이 극에 달하자
하느님께서는 극약 처방으로 죽음을 내리신 것입니다.
죽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얘기합니까?
살려만 주면 무엇이든지 다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하지요.
해 달라고만 하던 것에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다는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요구는 줄어들고 경청과 원의는 늘어나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하심은
지금 이렇게 공을 들이고 잘 해 주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고 계속 잘못 살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고,
그러니 하느님께서 극약처방을 쓰시기 전에
자기 좋을 대로 살던 망나니 삶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라고 하심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을 위한 기도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의로우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불쌍한 우리로 하여금 실천케 하시고,
당신이 좋아하시는 것을 항상 원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하소서.”
벌을 받아 불뱀에 물려죽은 이스라엘 백성의 얘기가 배경입니다.
오늘 코린토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는 길을 알려 주시고 손수 인도자가 되시었으며,
손수 양식과 음료를 주셨음에도 백성들은 불평불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잘 해줘도 불만인 것이지요.
사실 많은 경우 잘 해주면 오히려 불만이 늘어납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그것은 잘 해 주면 그것으로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해 주면 잘 해 줄수록 만족의 파이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만족이란 무엇입니까?
그릇으로 치자면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고
욕망으로 치자면 욕망이라는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지요.
그런데 욕망이라는 그릇이 더 커지면
지금까지의 만족이 불만으로 바뀌겠지요.
그러므로 만족의 비결은 만족의 파이를 줄이는 것이요,
욕망의 그릇을 최대한 작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적으로 말하면 가난입니다.
아예 허접스런 욕구들은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군대에 가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사람들의 불만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군대에 가니까 첫날부터 사람을 개돼지취급을 하며
정말로 죽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두들겨 패는 것은 기본이고 갖가지 야만적인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이런 것을 통하여
인간적인 대우는 아예 받을 생각은 아예 거두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밥 한 숟가락만 더 먹어도 그리 기분이 좋고
오늘 하루 맞지 않고 잠드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도원 청원자들을 양성할 때도 같은 방식을 썼습니다.
수도원 들어오기 전에 다들 편하게 살다가 들어오는데
각오는 하고 들어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려는 관성이 남아 있지요.
그래서 제가 쓰는 방법 중의 하나가 2월 달 입회인데
그 한 겨울 추위에 거의 보일러를 때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불교에서 혹독한 행자시절을 보내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뱀으로 벌을 내리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점점 늘어나는 요구와 그에 따른 불만이 극에 달하자
하느님께서는 극약 처방으로 죽음을 내리신 것입니다.
죽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얘기합니까?
살려만 주면 무엇이든지 다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하지요.
해 달라고만 하던 것에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다는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요구는 줄어들고 경청과 원의는 늘어나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하심은
지금 이렇게 공을 들이고 잘 해 주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고 계속 잘못 살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고,
그러니 하느님께서 극약처방을 쓰시기 전에
자기 좋을 대로 살던 망나니 삶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라고 하심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을 위한 기도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의로우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불쌍한 우리로 하여금 실천케 하시고,
당신이 좋아하시는 것을 항상 원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요즈음 예상치 못한 일이 지구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이티, 칠레, 대만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갑작스런 변을 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도 시흥에서 강도 3정도의 지진이 있었고, 그때 수도원 회의 중이던 우리 모두는 그 진동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합니다.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우리나라에도 큰 지진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심하게 흔들려 무너져 사람들이 깔려 죽게 되었을 때......과연 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겪게 되는 것이 죄가 많아서가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멸망이란 무엇일까요? 하느님을 모르고 희망 없이 죽는 것이 멸망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임을 알기에 우리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두는 회개의 삶을 살지 않고, 없어져가는 이 세상에 궁극적 희망을 둔다면, 그 삶은 멸망을 향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 극약 처방을 받았 었지요 !
이제는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릅니다.
그리고는
우리 주님 만을 바라 봅니다.
과거에 조금 고생했던 기억들이 지금 현재를 감사하게 합니다.
아무래도 같은 방법을 쓰신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마음이 불만이 있을 때는
욕구를 줄이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