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어제 부자 청년 얘기에 이어지는 얘기입니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따르라는 말씀에
주님 따르기를 거부한 부자 청년 얘기에 이어지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보고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는 자기와 제자들은 어떻게 되는지,
모든 것을 포기한 대가가 있는지 주님께 여쭙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베드로가 의기양양하다느니,
대가를 바라는 속물이라느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이해하는 차원에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정말 자기들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여 순수하게 묻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대가를 바라는 것도 속물근성이라고 치부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주님을 따르는 이유가 대가를 전혀 바라지 않고
순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면 제일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면
따름의 대가라기보다 포기의 대가랄까 포상이 있기를 바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다만 그 대가나 포상이 뭔지가 문제이겠지요.
그렇기에 대가가 무엇인지 묻는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도
속물이라고 나무라지 않고 대가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 대가랄까 포상의 내용이 어마어마합니다.
1) 주님과 함께 열두 옥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
2) 부모 자식과 버린 재산의 백 배를 받게 될 것
3) 영원한 생명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약속과 보장이 사이비 교주의 그 사기와 같은 것일까요?
또는 일부 개신교의 3박자 축복,
곧 구원, 재물, 건강의 축복과 비슷한 것일까요?
어쩌면 3박자 축복이라는 것이 오늘 복음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기에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버린 재물과 받게 될 재물의 의미입니다.
버려야 부모와 자식과 재물은 애착하고 움켜쥐고 있는 부모와 자식과
재물이고 그래서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개 될 재물은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움켜쥐는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 주님 말씀대로 버린 자에게 주어지는 그런 것이며,
그래서 대가의 성격보다는 포상과 은총의 성격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버려야 할 부모나 자녀는 혈육이기에 애착하는 부모와 자식이고,
얻게 될 부모와 자녀는 영적인 의미의 부모와 자식입니다.
딱 맞는 예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제가 자식을 포기하니까
저를 아버지로 여기는 아이들이 제가 결혼해 낳았을 아이보다 많습니다.
그러므로 받게 될 백 배란 같은 것이 수량적으로 백 배라는 뜻보다는
영적으로 백 배라는 뜻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신의 아버지를 포기하니까 영적인 아버지가 백 배로 생기고,
더 나아가 육신의 아버지를 포기하니까 하느님을 아버지로 소유하게 된
프란치스코처럼 하느님 아버지를 참 아버지로 소유하게 되며,
육신의 자녀를 포기하니 영적인 자녀가 백 배로 생기는 그런 의미일 겁니다.
그렇다면 재물은? 백 배의 재물이란 어떤 것입니까?
내 욕심을 채우는 재물이 백 배나 된다는 뜻일까요?
물론 그런 뜻이 아닐 것이고 그것은 내 욕심을 채우는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 사업에 쓰일 재물이 아닐까 생각하는 오늘 저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19년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고통과 사랑이 짝이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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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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