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저는 "제발 받어라!"는 제목의 말씀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저는 "제발 들어라!"는 주제로 말씀 나누기를 하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그런데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외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오늘 주님께서 '제발'이라는 표현을 아니 쓰셨어도
내용상으로는 너희가 들을 귀가 있다면 제발 들으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주님께서 제발 들으라고 하실 때 그 대상은 둘입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듣지 못하는 사람은 능력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요,
듣지 않는 사람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이 더 문제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듣지 못하는 사람은 부러 듣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니,
그러니까 들으려고는 하나 듣지 못하는 것이니
듣지 않는 사람보다 낫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것이 귀에 장애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그렇게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들을 귀가 없어서,
그러니까 영적인 장애가 있어서 그런 것이면 탓이 없다고 할 수 없지요.
그러니 들을 귀가 있기 위해서는 귀가 머는 것이 숫제 낫겠습니다.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지만 귀가 거의 멀은 저의 선배가 있습니다.
귀가 점점 멀어갈 무렵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기를 쓸데없는
세상 소리는 듣지 말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소리만 들으라는
하느님 뜻인 것 같다고 그래서 당신은 오히려 복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이 들을 귀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못 듣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 소리 때문에 또는 세상 걱정 때문에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교만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낫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안에 자기 소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남의 소리는 하느님의 말씀까지 포함하여-하느님의 말씀까지
남의 소리로 치부하기에-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마음 안에 미움이나 분노나 자기 주장 등으로 가득 차 있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 때문에 늘 화가 나 있으며,
자기 맘에 들지 않는 것 때문에 불만에 불평이 끊이지 않지요.
그러니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마음에 어떻게 다른 존재의 소리,
그러니까 이웃의 소리건 풀벌레 소리건 하느님의 소리건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교만으로 인해 이렇게 시멘트같이 된 마음을 일컬어
오늘 주님께서는 길바닥이라고 하십니다.
길바닥은 돌이 섞인 밭이나 가시덤불로 덮인 밭보다
더 들을 귀가 없거나 아예 없다는 말씀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자주 얘기하듯
교만이란 지독한 자기 중심이고 자기 집중이기에
겸손으로 들을 수 없게 하고 사랑으로 듣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게 하지요.
그러니 오늘 우리는 혹 욕심은 허락하더라도
교만만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노라고,
교만이 내 마음 밭에 발을 붙여 내 마음이 길바닥이 되는 것은
결코 허락치 않겠노라고 굳게 마음을 다져야 하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제자에게는)
http://www.ofmkorea.org/150338
17년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아는 자들의 몫)
http://www.ofmkorea.org/111537
16년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들을 귀.)
http://www.ofmkorea.org/93480
15년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나는 어떤 마음 밭?)
http://www.ofmkorea.org/82697
10년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형편없는 농부)
http://www.ofmkorea.org/4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