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사람의 아들은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철면피와 차돌피.
철면피라는 말을 아시죠?
鐵面皮, 쇠와 같은 얼굴의 사람,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차돌피는 아십니까?
제가 만들어낸 말이니 모르실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서에 나오는 ‘차돌처럼 만든 얼굴’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같은 뜻입니다.
그러나 철면피는 뻔뻔한 사람을 일컫고,
차돌피는 어떤 비난도 마다치 않고 당당하게 받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어떤 사람이 뻔뻔한 사람입니까?
죄를 짓고 잘못을 저질렀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것이 만천하에 드러나 다른 사람의 비난을 받아도
얼굴빛 하나 변치 않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내면이 밖의 비난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덕적으로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당연히 자기의 죄와 잘못을 인정치 않습니다.
그들이 인정할 때는 오로지 인정치 않으면 더 큰 손해가 올 경우입니다.
이에 비해 차돌피는 진정 자기 죄와 잘못이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 무엇을 하지 않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하며,
따라서 자기의 유불리에 따르지 않고 정의대로 하며
힘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르지 않고 불편부당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을 사랑 없는 자들이 비난하고,
이런 정의를 오히려 불의한 자들이 비난합니다.
자기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터무니없고 어처구니없지만
그래도 그의 정의로움 때문에 정의로운 사람은 당당하고
자신의 사랑 때문에 사랑의 사람은 비난을 감수하고 감당합니다.
그러므로 차돌피는 누구의 비난 때문에
자신의 정의와 사랑이 훼손되지 않기에 얼굴 빛 변치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주님은 당시 유력한 사람들의 배척을 받아
당신이 돌아가실 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예고하고 계십니다.
베드로 사도가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리지만
그런 베드로를 주님께서는 오히려 사탄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자신의 유불리를 따라 살지 않고
사랑의 정의의 길을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길인데
그 그리스도의 길을 베드로 사도가 막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작은 이익과 손해에 흔들리는 소인배의 철면피가 아니라
사랑과 정의의 길을 당당하게 가는 그리스도의 차돌피가 되기로
마음먹으며 주님의 은총을 구하는 오늘 주일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롬2;7)뒤 돌아 서지 않겠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