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퍼뜩 드는 느낌은 '이용당하다'는 느낌입니다.
요셉이 이용만 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 말입니다.
우리말에 이용되다라는 말에 비해
이용당한다는 말은 좋은 뜻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이용되다는 말은 쓸모 있다는 뜻과 맥을 같이합니다.
쓸모가 있어서 많이 이용되는 것이지요.
사실 아무 쓸모가 없거나 쓸 데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그를 찾지 않을 것이니 불행합니다.
이것은 심지어 버림받는 것과 마찬가지의 불행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의미 있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크게 두 경우,
곧 사랑받을 때와 귀하게 쓰임 받을 때인데
공통적인 것은 이때 우리는 홀로 있지 않고 관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쓸모가 있고 그래서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사랑받는 것만은 못해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쓸모가 있어 쓰임 받긴 하지만 이용만 당하는 것은 쓸모없어
쓰임 받지 못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불행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용만 당하는 것은 단물만 빼먹고 차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고,
쓸모없어 버림받는 것보다 더 쓰라린 버림받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이용만 당한 존재일까요?
파혼해도 시원치 않을 마리아와 결혼해주었건만 아내는 물론
혈육도 얻지 못했으니 요셉은 이용만 당한 것이고 그래서 불행했을까요?
며칠 전 어떤 자매님으로부터 모세가 죽기 전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이 눈에 보이는 모압 땅에 묻혔는데 하느님께서 모세를
그렇게 부려먹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은 무슨 뜻인지,
하느님께서 너무 하신 것이 아닌지, 선하신 하느님을 믿는 데 있어서
적지 아니 걸림돌이 되기에 묻는 거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문제를 많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적절한 답을 제가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 요셉을 생각하며 둘 다 이용만 당한 것인지 같이 생각해봤습니다.
이 세상의 복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고 하느님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이 둘은 하느님께 이용만 당하고 복은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복의 기준이 이 세상이 아니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라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이 세상 가나안이 아니라 천상 예루살렘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인데 그 기준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히브리서와 묵시록을 보면 천상 예루살렘이 우리가 가야 할 곳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이 지상의 가나안이 아니라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가야 하는 순례자인 우리 모든 인간의 예표이고,
그의 사명도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것까지이지 자신이
가나안에 들어가 다윗처럼 왕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은 두 가지입니다.
모세의 광야의 전통과 다윗의 왕조 전통,
모세의 순례자 전통과 다윗의 정주 전통입니다.
그러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사명을 완수한 뒤에는
순례자로서의 삶으로 자신의 삶을 마쳐야 예표가 되는 것이지요.
오늘 요셉도 이 세상에서의 자기 성취가 인생의 목표라면
그는 이용만 당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하느님을 진실하게 믿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사명완수가
인생의 목표였을 것이고 그것으로 행복하였을 것이고,
그것은 어제 봤듯이 영적 족보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더 할 수 없는 영광을 그가 얻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구원을 이루는 의로운 싹)
http://www.ofmkorea.org/299375
18년 12월 18일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http://www.ofmkorea.org/176782
17년 12월 18일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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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12월 18일
(인격적인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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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12월 18일
(가난이란 사랑외에 다른 것은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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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12월 18일
(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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