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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 두 제자(1896)

  가 : 위제느 뷔르낭(Eugine Burnand : 1850-1921)

  기 : 캔버스 유채 (80X134cm)

소재지 : 프랑스 파리 오르세(Orsey) 미술관


예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에 속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실망한 제자들은 다 흩어졌으나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그리스도교는 시작되었다. 성서는 예수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 여러 가지를 확실히 전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 확실히 살리셨습니다. 그 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지금 우리 백성들 앞에서 예수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사도13:30-31)


성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신체적 유한성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렸다고 전한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보고 기뻐하였다,”(요한 20: 19-20)


여기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문이 잠긴 상태에서 들어올 수 있는 인간 육체의 한계성을 벗어난 상태이면서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자 그들은 스승을 만난 것을 기뻐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 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셔서 그들과 애환을 나누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당신이 진정으로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의  일상 삶에 함께 하시고 계심을 알리셨다.


그러기에 부활 신앙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재생 체험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리는 생명 체험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루카 복음에서 엠마오 체험으로 완결되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길을 가는 제자들의 여정에 동반하셔서 함께 걷다가 저녁때가 되었을 때 어떤 집에서 같이 식사 하실 때 제자들은 그분이 스승 예수임을 알아보면서 제자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는 내용이 드러나고 있다.(루카 23 : 13- 35)


그러기에 성서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그리스도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란 말을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크리스챤 신앙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면서도 부활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으로부터 시작하기에  대단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 작품의 배경이 되는 것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마리아 막달래나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막달레나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황망하게 무덤으로 달려가는 모습인데, 이때 그들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알리고 있다.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성녀 막달레나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충격적인 주님의 부활 소식에 당황함과 호기심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으나 믿으려 하지 않았다.”(마르 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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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배경은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 내용이다.


"주간 첫날 이름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 보다 더 빨리 달려 무덤에 다다랐다.”

(요한20: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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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성서에서 시종일관 주님의 사랑받는 제자로 등장하고 있다.


"베드로가 돌아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요한 21: 20)


그는 제자단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면서 성서의 내용대로 성모님을 모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 19: 26)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가장 어린 제자이고 다른 제자들이 기혼자인 것과는 달리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의 삶은 여러 면에서 미숙하고 어렸지만 순수하고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일념의 삶이었고 그의 인생 선배들인 제자들이 다 도망 간 처지에서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 곁을 지킨 유일한 제자이기도 했다.


그가 입고 있는 흰옷은 언제나 맑은 마음으로 주님 만을 따랐던 그의 영혼의 상징이다. 사도 요한이 입은 힌 옷은 그의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충실성의 표현이다. 그의 가슴에 모은 두손은  주님을 만나려가는 그의 자세가 기도처럼 경건하고 순수한 것임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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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절대로 배반치 않겠다고 큰 소리 치기가 무섭게 세 번이나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와 달리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항구했다. 사도 요한의 삶은 강하다는 것과 약하다는 것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세상에서 강하다는 것은 사실 약한 것이고, 눈에 띄지 않기에 존재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 약한 것 안에 강함이 들어 있음을 전하고 있으며 이런 강함의 원천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항구성이다. 그의 청순한 모습은 신체적 젊음의 깨끗함이나 생기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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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어부로 살았던 그의 이력처럼 만고풍상을 다 겪은 모습이다.

또한 이 얼굴은 그의 직업적 표현만이 아니라 주님 제자로서 그의 삶의 경력이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교회를 인도할 으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주님 십자가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주님으로부터 사탄이라는 준엄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성서는 그의 이런 행적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마태 16,21-24)


"반석과 사탄"은 베드로 안에 공존하던 모습이었으며, 주님이 폭도들에게 체포 되시는 순간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자기 스승을 배반하는  인간적으로 비참한 죄를 지었다. 베드로가 이 죄를 뉘우치며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는 것은 더 없이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 베드로의 마음을 너무도 잘 대변하고 있다(마태 26: 75)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주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여인의 말에 놀라며 주님의 시신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받아들이기에는 이런 인간적인 여정을 거쳐야 하는 법이며 그렇지 않을 때 부활이란 하나의 허망스런 상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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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손은 전혀 다르다. 오른손은 가슴에 왼손은 앞을 가리키고 있다. 그는 주님만 생각하며 불충했던 자신의 삶이 생각나면서 깊은 회한에 잠긴다. 이 뉘우침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게 만들었다. 주님께 다시는 이런 비굴한 잘못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의 모습과 같다. 


작가는 스위스의 유복하고 신앙심 깊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개신교 신자로서의 삶을 경건히 살았다. 그가 처음에는 건축 방면으로 공부를 시작했다가 회화에의 갈망을 꺾을 수 없어 회화에 몰두해서 경건한 신앙인답게 성화를 많이 제작했으며 또 자연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풍경화도 남겼다. 그는 그전 시대 바르비죵 화파로 활동했던 밀레의 화풍에 심취해서 하느님의 작품으로서 자연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부활한 주님을 만났단 막달레나의 말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가는 두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분신과 같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도 요한처럼 충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고 싶은 열망과 사회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유혹과 갈등 앞에서 베드로처럼 타협하거나 주저앉고 싶은 유혹도 느끼며 살아간다.

 

이처럼 크리스챤인 우리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름다운 신앙의 모델과 같은 사도 요한의 모습과 허약하고 변덕스러운 베드로와 같은 양면성이 공존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서 잘 살아보겠다는 약속과 결심을 종종 하지만 현실에서의 유혹과 어려움을 겪으면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스럽게 요한의 모습에서 베드로의 모습으로 변질되는 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에게도 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우리 신앙의 핵심인 부활 신앙을 살기 위해선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더 없이 황당하고 불확실한 주님 부활을 굳게 믿으며 어떤 좌절의 순간에도 실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두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라는 용기 있는 권고를 주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크리스챤인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이 두 제자들처럼 부활 혼신의 노력으로 신앙에 몰두하다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전한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멋진 선교의 메시지를 우리 주위에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편 저자는 다음과 같은 열정적인 기도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 (시편 62: 2)


이런 열렬한 기도는 우리가 막달레나처럼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만난 큰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네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요한 20: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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