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부부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습니까?”
참으로 재미난 것은 남자는 대체로 다시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여자는 대체로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걸 두고 남자는 대체로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고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불만족한 것으로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는 지금까지 남자가 여자보다
배우자에게 더 잘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과거 불만보다는 미래의 바람이 더 작용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지금 남편보다 더 나은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그런 바람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요?
그만큼 여자가 남자보다 만남, 관계를 더 중시한다는 표시이고,
남자는 일을 더 중시하기에 웬만하면
새로운 관계를 맺기보다 현재의 관계에 만족한다는 표시일 것입니다.
그런데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질문도 해 보고 싶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결혼하겠는지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는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든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든
저는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여자를 혐오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자를 현재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래서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도, 현재도 저는 여자를 사랑하고
어쩌면 하느님의 섭리대로 남자보다 여자를 더 사랑하고
미래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결혼하지 않음은 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에 매이지 않고 다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소유하고 소유되는 그런 사랑은 하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이것이 하느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윤회와 인연으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일 것입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는
경전의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에게 신랄하게 자문합니다.
다 사랑한다면서 하나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얼치기가 아닌지..
다 사랑한다면서 하나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랑 불능자는 아닌지..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부부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습니까?”
참으로 재미난 것은 남자는 대체로 다시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여자는 대체로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걸 두고 남자는 대체로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고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불만족한 것으로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는 지금까지 남자가 여자보다
배우자에게 더 잘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과거 불만보다는 미래의 바람이 더 작용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지금 남편보다 더 나은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그런 바람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요?
그만큼 여자가 남자보다 만남, 관계를 더 중시한다는 표시이고,
남자는 일을 더 중시하기에 웬만하면
새로운 관계를 맺기보다 현재의 관계에 만족한다는 표시일 것입니다.
그런데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질문도 해 보고 싶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결혼하겠는지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는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든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든
저는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여자를 혐오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자를 현재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래서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도, 현재도 저는 여자를 사랑하고
어쩌면 하느님의 섭리대로 남자보다 여자를 더 사랑하고
미래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결혼하지 않음은 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에 매이지 않고 다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소유하고 소유되는 그런 사랑은 하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이것이 하느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윤회와 인연으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일 것입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는
경전의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에게 신랄하게 자문합니다.
다 사랑한다면서 하나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얼치기가 아닌지..
다 사랑한다면서 하나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랑 불능자는 아닌지..
새벽마다 신부님 강론으로 하루를 시작한지 2년하고도 4개월이 지났어요.^^
신부님덕분에 사랑하는 법과 말씀을 되새기는 법을 조금씩 배워갑니다.
저도 신부님께 감사 인사드려요~꾸벅(-- __)
하루을 시작하며 말씀의 묵상을 접할 수 있도록
'아침 형 인간'(?)... 의 신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꾸벅~
지나가다가 그냥 지나칠수 없어서 한자 남깁니다.
결혼하신 분들도 각양각색.. 홀로 사시는 수도자들도 각양각색..
인생의 다양성 안에 존재하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뵙습니다..^^
저는 이 말씀 공감 100배...그렇게 사셨고 또 그렇게 사실 거잖아요...다시태어나도 그렇게 사시겠다고 할 만큼 사랑이 많으시면서...왜 끝에 가서 자책하세요? 신부님, 때론 조금의 인간적인 생각도 더 인간적이지 않으세요?...ㅎㅎ 저도 뭔 말인지...
저는 사는 것에(?) 급급해서...하여간 결혼생활 해보니 마음이 가난해진다는 것은 제 경험으로는 좀 힘들어요..아니 욕심을 줄이는 자체도 힘든걸요...'옛날에 넘 지지리 가난하게 살아서 그런가...' ㅋㅋㅋ
댓글에서도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하면 서운하실른지요...^^
하느님안에서 사랑을 사시는 분들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고백들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깨닫게 해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눔도 점점 깊어지는 것을 신비롭게 바라봅니다.
그런데 만남을 통해 승화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 홀로가 아닌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관계안에서요.
예수성심성월에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더욱 폭넓게, 깊이있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나의 사랑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었다고....
모두를 사랑 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 하는 것 입니다."
결혼 하게 되면 하고 ,결혼 하지 않게 되면 안 하고
결혼은 각자의 선택 이지만
하느님 안에서 사랑은 필수 입니다.
하느님의 순수하고,영원한 사랑이 빛나는 유월 입니다.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해 순수한 마음으로 내 시간을
내어주고 돌아올 때 내 자신의 존재의미를 뿌듯하게
느끼며 사랑하고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맛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큰 기쁨을 맛보기 위해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각오를 하게 되더군요.
내가 순수하게 이웃을 사랑하고 살아가면
하느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으로 내 안에 머무신다는 것을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라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되는지요?
고맙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니또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사랑할 때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게 되고
사랑의 '확장'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소유의 사랑에서
보편적인 사랑의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이고
이것은
은총으로 가능한 일이라 생각 됩니다.
결혼생활은 해봤으니 혼자서도 살아보고 싶어요~ㅎㅎ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거예요.
결혼이 구속보다는 오히려 더 큰 자유를 주기에 저는
사랑하는 일에 결혼했다는 이유로 굴레를 느낀 적이 전혀없어요..
신부님! 이만하면 저는 결혼 잘 한것 맞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