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
오늘 말씀에서 “오히려” 행복하다는 주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예수님을 잉태하고 젖 먹히신 마리아가
불행하다거나 행복치 않다는 뜻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복음의 다른 곳에서 마리아가 여인 중에 복되다 하였으니
누가 마리아보다 더 행복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이 사실은 마리아가 행복한 이유와 같습니다.
자식이 없는 엄마보다 자식을 둔 엄마가 더 행복하고
평범한 자식을 둔 엄마보다 훌륭한 자식을 둔 엄마가 더 행복하겠지요.
이것이 엄마가 된 인간의 소소하고 평범한 행복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행복이 이런 것일까요?
마리아가 행복한 이유는 이런 인간적인 행복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 중심적인 행복입니다.
이 세상 어떤 여인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였기에
마리아는 여인 중에 가장 복된 여인인 것이지 달리 복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자녀여서 행복한 것이지
인간의 어머니여서 가장 복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한다면
훌륭한 인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여인은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고 얘기합니다.
제가 비록 애를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아기의 발길질에 생명을 느끼는 자궁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리고 젖을 빨릴 때. 살덩어리도 아니고 그저 젖도 아니며
사랑이 되고, 생명이 되는 그 젖가슴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저는 진정 어머니들의 그 행복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젖은 몸무게 50Kg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살덩어리일 뿐.
그런데 그 젖이 인간이 죽을 때까지 그리워하는 젖이고,
젖을 빨지 못하고 큰 사람은 불행하게도 하는 젖입니다.
그래서 제가 신체의 한 부분이 된다면 다른 신체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머리가 되지 않고,
손이 되지 않고,
발이 되지 않고,
입이 되지 않고,
귀가 되지 않고,
위와 장이 되지 않겠습니다.
오직 자궁이 되고 젖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이렇게 자신도 행복하게 하고
자식들도 행복하게 하는 자궁과 젖의 어머니가 되지 말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한 자식의 어머니가 되는 것,
이 세상살이에서 끊기도 힘들고 넘어서기도 힘든 행복이지만,
이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음을 깨닫고 맛보라고 초대하십니다.
얼마나 힘이들고 또한 출산도 마굿간에서 가히 한여자로서 성모 어머님 통고
앞에 위로 받으며 비참앞에 성모님 생각하면 위로 평화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안에서 기뻐뛰니"
남은 여정 기쁘게 행복하게 꾸려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