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이 들려 있었다.”
“그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혜가 많은 것과 재물이 많은 것.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면?
둘 다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겠지만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부자 청년처럼 재물을 택하는 바보가 되지 말고
지혜를 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혜를 택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지혜를 택하면 왜 지혜로운지를 오늘의 지혜서는 얘기하는데
지혜를 택하면 모든 것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시바의 여왕이 그 지혜를 들으러 올 정도로 지혜로웠던 솔로몬.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을 청하라고 하지만
다른 것은 청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하자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더불어 모든 것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지혜란 지식이 많은 것이 아니고
분별지分別智가 있는 것입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분별.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에 대한 분별.
더 가치 있고 덜 가치 있는 것에 대한 분별.
더 우선적인 것과 덜 우선적인 것에 대한 분별.
그러나 분별지分別智와 분별심分別心은 다릅니다.
분별의 마음은 인간에게서 나오고 자기중심성이 그 원천이지만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오고 하느님을 두려워함이 그 원천입니다.
솔로몬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받고자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기에 하느님께 모든 것을 청하며,
하느님께 청하기에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십니다.
솔로몬에게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시고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믿은 솔로몬은 위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였고
아래로는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고 잘 보살피려고 애썼습니다.
한 마디로 경천애인敬天愛人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부자 청년에게서는 그 반대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나누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걸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보다 이 세상과 이 세상 재물을 더 사랑하였고,
하느님께서 주신 재물을 가난한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울상이 되어 슬픈 얼굴로 주님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뭣이 그를 슬프게 하고, 그는 무얼 슬퍼했을까요?
주님은 하느님 나라 비유에서 보물이 묻혀있는 밭을 발견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사는데
애지중지하던 것을 다 팔아도 슬프지 않고 기뻐하였다고 하십니다.
왜냐면, 그는 잃은 것이 아니고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도 슬프지 않을 보물을 얻은 것입니다.
문제는 그 보물이 땅(밭)에 묻혀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걸 알고 땅을 사고 기뻐하는데
그걸 모르는 부자 청년은 뒤늦게 이걸 알고 통탄할 것입니다.
그러니 부자 청년의 슬픔은 기뻐할 수 없는
자신의 바보스러움에 대한 슬픔이 아닐까요?
담대히 물어보는 모습 ,울상이 되어 슬퍼 떠나갔지만 양심의고통 엄중히 말씀하시는
예수님 ,미래의 어느날 다시 올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이미 들었기에 그 말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꼭 제 모습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기 싫고 귀찮은 일들을 함으로
이웃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