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이 받은 한 탈렌트를 그대로 돌려드린 것에 대해
오늘 비유속의 주인은 종이 악하고 게으르다고 질책을 합니다.
그런데 이 종에게 게으르다고 함은 이해되지만
악하다고까지 함은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벌지 않았으니 게을렀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돈으로 아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악하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종의 어떤 점이 악한 것입니까?
게으름이 악이라는 것일까요?
우리는 게으름을 부지런 함과 반대되는
하나의 성격 또는 성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게으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저를 봐도 저는 무지 게으릅니다.
전화 하나 거는 것도 미적거리다 때를 놓치기 일수이고,
방 청소 하기 싫어 가능하면 어지럽히지 않고,
설거지 하기 싫어 요리할 때 도구나 그릇을 많이 쓰지 않는 편입니다.
저의 손주들 중에 저를 제일 많이 닮은 조카에게서 나온 손녀가
아주 어린 나이인데도 책 읽는 것 좋아하고 나가는 것 싫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웃은 적이 있는데 저나 조카가 바로 그런 유형입니다.
그런데 이런 게으름은 동작이나 행동이 굼뜬 것일 뿐
악하다고 할 수는 없고 참으로 악한 게으름이 있지요.
그것은 바로 해야 할 사랑을 하지 않는 게으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비유의 주인이 종을 악하다고 한 것에는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이라는 탈렌트를
이웃과 나누지 않은 게으름의 뜻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종의 악함에는 다른 뜻들도 있습니다.
사랑의 반대 지점에 악이 있는 것처럼
악은 늘 은총의 반대 지점에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처럼 또는 인간처럼 하느님을 아는 것인데
자기가 악하고 자기가 미워하기에 하느님도 악하고
그래서 은총의 하느님이 아니라 모진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 이것이 우리 인간의 1차적인 악인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의 허물과 죄를 내 탓이라고 하지 않고,
하느님께 뒤집어씌우기도 하여 그저 악한 정도를 넘어 사악하기도 합니다.
비유에서 악하고 게으른 종은 자기의 악함과 게으름을 자기 탓이 아니라
주인이 심지도 않고 거두는 모진 분이기 때문이라며 주인 탓으로 돌립니다.
아담과 하와의 탓 돌리기가 재발할 것인데
창세기에서는 피조물끼리 탓 돌리기를 한 데 비해
여기서는 창조주 하느님에게 탓 돌리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비유를 묵상하며 게으른 죄악보다 더 큰
하느님을 잘못 하는 죄의 악,
자기의 허물과 죄를 하느님께 탓 돌리기하는 죄와 악이
내게도 있을 수 있음을 돌아보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능력은 꼭 사랑과 만나야)
http://www.ofmkorea.org/259001
18년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악하다고 하는 사람이 악하다.)
http://www.ofmkorea.org/142943
17년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능력에 노력을 더하라는 뜻)
http://www.ofmkorea.org/110841
16년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게으를 뿐인데 악하다니!)
http://www.ofmkorea.org/92940
13년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나의 신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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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하느님을 재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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