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풍성해졌다는 말씀에 이어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은총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좋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은총의 악용이 있지요.
악용이란 선을 악하게 이용하는 것인데
하느님의 은총을 악용하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리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늘 용서하고 내 편인 엄마가 있으니
그 엄마의 약점을 이용하여 죄악을 저지르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을 믿기에 하느님의 은총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도 엄마도 사랑이 약점입니다.
하느님도 엄마도 사랑하기에 모든 고통과 시련에 강하기도 하지만
자녀의 죄에 대해서는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느님 사랑을 믿고 은총을 악용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선 은총을 악용하면 은총은 은총이 아니게 되지요.
다시 말해서 은총을 악용하면 은총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은총 때문에 인성이 타락하여 죄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은총 지위를 상실함은 물론 죄의 노예가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방금 인성이 타락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점점 욕망을 쫒는 인간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성과 감성과 의지,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우리의 욕망이 상선이 아닌 하선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이 진리를 따르게 하고,
우리의 의지가 아무리 싫어도 하느님 뜻을 따르게 해야 하는데
우리의 감성이 당장 좋은 것만 쫓기에 욕망이 설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바오로 사도는 오늘 이것을
욕망에 순종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감성은 지상선이신 하느님을 쫓지 않으면 하선을 쫓게 마련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매우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성향의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지상선이신 하느님을 만나기 전의 그는
자신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좋은 것을
감각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최대한 즐기며 살았는데
그런 그에게 하느님께서는 주인과 종 중에 누구를 섬길 것인지 물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무엇이고, 즐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상선인 은총을 즐기고 지상선이신 하느님을 쫓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주인과 종 중에 어떤 것을 섬길지
프란치스코처럼 선택을 요구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시대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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