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로마서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음을 보았는데 오늘 로마서는
내 안에 내가 아니라 다른 영들이 있을 수 있음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런데 오늘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실은 성령에 대해서만 얘기하는데
저는 의도적으로 다른 영들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왜냐면 바오로가 비록 육과 성령에 대해서만 말하지만
이 말씀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프란치스코는
육의 영과 주님의 영을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오로 사도가 그저 육이라고 한 것을
저는 프란치스코를 따라 육의 영으로 이해한 것이지요.
어쨌거나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육이나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육의 영은
성령을 거스르고 하느님 나라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러는 이유가 바로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이 무엇입니까?
보통 육체 또는 육신이라고 하는데 그런 뜻뿐이겠습니까?
육이란 말 그대로라면 살 또는 살덩어리라고 해야겠지만
넓은 뜻은 지상성地上性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
세상 사람들의 칭찬,
세상의 부귀와 영화,
육체적인 쾌락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성취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썩어 없어짐으로 끝날 것들이고
당연히 이런 것들은 세상과 함께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이 엄연한 것을 알면서도 모르고 삽니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알면서도 잊은 채 또는 모르는 체 삽니다.
그래서 그러다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갑자기 죽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빌라도에게 살육당한 사람들과 실로암 탑에 깔려
갑자기 죽은 사람들 얘기가 나오지요.
그런데 '갑자기'란 무슨 뜻입니까?
내가 뜻하거나 예상치 못한 거지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갑자기'가 아닙니다.
사건은 '갑자기'이지만 종말과 죽음은 예정된 것이고 계속 진행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회개는 종말이 '갑자기'가 아니도록,
아니, 하느님 나라가 '갑자기'가 아니고 죽음이 생명이 되도록
육의 영이 아니라 주님의 영을 안에 모시고 사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로마서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
제가 지금 깨어 있는거 맞는지ᆢ
다시 저를 흔들어 깨워 보겠습니다ㆍ고맙습니다ㆍ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개인의 성숙과 공동체의 성장)
http://www.ofmkorea.org/384968
19년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또 회개?)
http://www.ofmkorea.org/279550
18년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두려움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되는 회개)
http://www.ofmkorea.org/160564
16년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회개의 합당한 열매란?)
http://www.ofmkorea.org/94772
15년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누가 우리를 구해줄까?)
http://www.ofmkorea.org/83694
14년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참아주시는 하느님)
http://www.ofmkorea.org/71472
13년 연중 제29간 토요일
(회개, 한꺼번에가 아니라 그때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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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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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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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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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나의 구원을 위한 너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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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성숙한 인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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