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집사의 비유와
이어지는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라는 말씀은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애기입니다.
그런데 약은 집사의 비유야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라는 가르침은 조금 난해합니다.
그렇지요.
약은 집사의 얘기는 이해가 갑니다.
썩어 없어질 이 세상 재물을 영원히 가지고 갈 것인 양
애지중지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고,
반대로 썩어 없어질 것을 가지고
사람을 얻고,
사랑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면 이 얼마나 약은 사람의 현명함입니까?
이 세상 재물이 사실은 다 하느님의 것이고
잘 관리하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니
내 것 아닌 하느님의 것을 가지고
그분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하는데 쓰는 것이
우리 구원이고 현명이겠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말씀들입니다.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이 큰 일에 성실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이 큰 일에 불의하다는 말씀은 이해가는데,
우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데 성실치 않으면
하느님께서 참된 재물을 맡기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남의 것을 다루는데 성실하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자기 몫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은 잘 이해해야 합니다.
큰 것, 작은 것을 구별하지 않고,
불의한 재물과 참된 재물을 구별하지 않고,
내 것, 남의 것을 구별하지 않고,
똑 같은 태도를 가지는 것,
이것이 성실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큰 일에는 머리가 빠질 정도로 너무 신경을 쓰고
작은 일은 건성, 건성하기 쉽습니다.
또 우리는 불의한 재물, 지상의 재물에는 집착하고
천상 재물에는 무신경하거나
반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인데도
천상 재물에만 신경 쓰고 지상 재물에 무책임하기 쉽습니다.
또 내 것은 악착같이 챙기고 남의 것은 소홀하거나
반대로 남의 것에 대해서는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소심하게 관리하지만
자기의 것은 너무 안이하게 관리하기 쉽습니다.
이런 것은 다 잘못된 것이고,
이런 사람은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고 믿을만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무엇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뚜벅, 뚜벅”입니다.
등산으로 치면 처음이나 끝이나,
쉬운 길이나 힘든 길이나 같은 보조로 가는 것입니다.
등산이라는 것을 처음 사람은 대개 이것을 잘 못합니다.
처음 등산하여 1-20분은 힘이 있으니까 막 갑니다.
등산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이내 식식 헉헉대다가 마침내는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뚜벅 뚜벅 가는 것은 처음이건 끝이건,
쉬운 길이건 힘든 길이건 내가 정한 보조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실이란 내, 외부 조건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자기 원칙에 따라 꿋꿋이 가는 것입니다.
조건이란 위에서 얘기한 조건 말고도 다양하고
우리는 이런 조건들에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이건 싫어하는 일이건,
이익이 되는 일이건 손해가 되는 일이건,
자기 일이건 공동의 일이건 이런 것에 좌우되지 않는 것,
이것이 필요한데 요즘 사람들을 보면 이런 면에서 부족합니다.
마음은 조건에 좌우되고 싶지 않으나
힘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기 위해서는
힘, 무엇보다 사랑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바로 저력(底力)인데 말입니다.
이어지는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라는 말씀은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애기입니다.
그런데 약은 집사의 비유야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라는 가르침은 조금 난해합니다.
그렇지요.
약은 집사의 얘기는 이해가 갑니다.
썩어 없어질 이 세상 재물을 영원히 가지고 갈 것인 양
애지중지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고,
반대로 썩어 없어질 것을 가지고
사람을 얻고,
사랑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면 이 얼마나 약은 사람의 현명함입니까?
이 세상 재물이 사실은 다 하느님의 것이고
잘 관리하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니
내 것 아닌 하느님의 것을 가지고
그분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하는데 쓰는 것이
우리 구원이고 현명이겠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말씀들입니다.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이 큰 일에 성실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이 큰 일에 불의하다는 말씀은 이해가는데,
우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데 성실치 않으면
하느님께서 참된 재물을 맡기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남의 것을 다루는데 성실하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자기 몫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은 잘 이해해야 합니다.
큰 것, 작은 것을 구별하지 않고,
불의한 재물과 참된 재물을 구별하지 않고,
내 것, 남의 것을 구별하지 않고,
똑 같은 태도를 가지는 것,
이것이 성실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큰 일에는 머리가 빠질 정도로 너무 신경을 쓰고
작은 일은 건성, 건성하기 쉽습니다.
또 우리는 불의한 재물, 지상의 재물에는 집착하고
천상 재물에는 무신경하거나
반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인데도
천상 재물에만 신경 쓰고 지상 재물에 무책임하기 쉽습니다.
또 내 것은 악착같이 챙기고 남의 것은 소홀하거나
반대로 남의 것에 대해서는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소심하게 관리하지만
자기의 것은 너무 안이하게 관리하기 쉽습니다.
이런 것은 다 잘못된 것이고,
이런 사람은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고 믿을만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무엇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뚜벅, 뚜벅”입니다.
등산으로 치면 처음이나 끝이나,
쉬운 길이나 힘든 길이나 같은 보조로 가는 것입니다.
등산이라는 것을 처음 사람은 대개 이것을 잘 못합니다.
처음 등산하여 1-20분은 힘이 있으니까 막 갑니다.
등산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이내 식식 헉헉대다가 마침내는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뚜벅 뚜벅 가는 것은 처음이건 끝이건,
쉬운 길이건 힘든 길이건 내가 정한 보조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실이란 내, 외부 조건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자기 원칙에 따라 꿋꿋이 가는 것입니다.
조건이란 위에서 얘기한 조건 말고도 다양하고
우리는 이런 조건들에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이건 싫어하는 일이건,
이익이 되는 일이건 손해가 되는 일이건,
자기 일이건 공동의 일이건 이런 것에 좌우되지 않는 것,
이것이 필요한데 요즘 사람들을 보면 이런 면에서 부족합니다.
마음은 조건에 좌우되고 싶지 않으나
힘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기 위해서는
힘, 무엇보다 사랑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바로 저력(底力)인데 말입니다.
맑은 밤 하늘에 둥글어지는 보름달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성실의 의미도 제대로 알게되니
성실만이 하느님께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