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캐오의 나이가 몇이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우선 그저 세리가 아니고 세관장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젊은 나이는 아니고 지긋한 나이일 거라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니 오랜 세월 세리로서 재물을 많이 모았고,
지금은 상당한 재력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주님을 영접한 다음
자기가 그동안 모은 재산을 나눠주겠다고 합니다.
이런 자캐오를 보면서 어쩌면 이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젊었을 때는 부자로서 이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고,
늙어서는 보물이 묻힌 밭을 산 사람처럼 가진 것 팔아 천국을 산,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승에서의 행복과 저승에서의 행복을 다 누리는 사람.
저와 같이 생각하는 분들, 특히 지금 연세 지긋한 분들은
자캐오처럼 이승과 저승의 행복을 다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자캐오처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시고,
나눔으로써 천국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제게 이렇게 애기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 저는 이 세상 부귀영화를 누려본 적이 없으니
자캐오와 같을 수는 없겠습니다.”
만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불쌍한 분입니다.
왜냐면 아직 늘그막의 자캐오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불행했던 젊은 날의 자캐오의 상태에 아직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자캐오가 젊은 날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은 것은 불행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돈을 그렇게 죽어라 긁어모으지 않습니다.
늙은 자캐오에게서 볼 수 있듯이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나눕니다.
그것도 넘치도록 행복한 사람이라야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자캐오도 젊어서는 그렇게도 불행했고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요.
그럴수록 그에게서 사랑은 사라지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에게서 떠나갔고
그럴수록 불행의 늪으로 그는 빠져들었습니다.
엄동설한에 곁불을 쬐듯 돈은
손만 따듯하게 하지 몸과 마음 모두를 따듯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차츰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돈이 인간에게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닌 무엇이 그에게 행복을 주는지는 아직 확실히 몰랐습니다.
돈이 아니라 사랑이
거짓 행복이 아니라 완전한 행복을 준다는 것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은 그분이 예리고에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자기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지만 그분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앞질러 가서 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앞질러 가고 나무에 오르는 열성을 보시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에게 눈길을 주시고 말을 건네십니다.
그저 멀리서라도 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눈길을 주시고 말을 건네실 뿐 아니라 그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하십니다.
썰렁하던 집안이 훈훈해지며 왠지 가진 걸 다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아뢰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즉 창피,멸시 다 당하더라도 주님 만나려는 그 열정과믿음
오늘도 저 자신 나무에 올라가기 주저하지않기를~~
사랑은 한 없이 나누고 또 나누고 그래도 또 주고 싶은 마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