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제가 이곳 대전에 와서 서울에서 하던 것과 같은
스터디 그룹을 10여 명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전에 여기서 하던 것을 서울에서도 했는데
돌아와서 다시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제는 같이 연구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다가
하느님 체험과 영의 작용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러다가 자기의 하느님 체험 나눔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하느님 체험을 나눠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나눈다면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토론 끝에 제가 프란치스코의 말씀에 바탕하여 한 얘기는 이렇습니다.
자기의 하느님 체험을 자기를 과시하고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칭찬과 영광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면
그것은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육의 영에 의한 것이다.
자기의 하느님 체험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나누면 그것은 사랑이 되기에 성령에 의한 것이다.
실상 주님의 영에 이끌리고 육의 영에 이끌리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엇갈릴 수 있습니다.
성령 쇄신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잘못된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처음에는 자기의 하느님 체험을 정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이웃의 하느님 체험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기 위해 간증을 하는데,
자주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되면
그 달콤한 맛에 영을 사유화, 곧 자기의 것으로 소유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주님의 영은 그에게서 떠나고
육의 영이 그를 지배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는 얘기합니다.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말라고 말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요,
헌신은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불을 끄지 말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자기 비움과 내어줌의 사랑은 사라지고
자기만족적 성취욕과 애착심 때문에 무엇을 하게 되면
마치 <나무꾼과 선녀> 얘기의 그 나무꾼처럼 주님의 영을 잃게 됩니다.
노루를 살려준 처음의 그 순수한 사랑을 잃고
욕심과 집착이 그 안에 들어온 순간 선녀는 떠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