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2월 26일 토요일
1교부들의 말씀 묵상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마르 10,13)
회개에서 면제된 이는 누구인가?
자유롭게 의지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나이의 사람이 신자들의 성사를 받고자 할 때, 옛 삶을
회개하지 않으면 새 삶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아세례 받는 아기들은 이 의무에서 면제됩니다. 그들은 아직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에 데려오는 이들의 신앙은 유아의 성화와 원죄의 용서에 유익합니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 죄에 얼룩진 채 태어나지만, 또한 다른 사람의 물음과 응답을 통하여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1성인 / 영적 글 묵상
말씀의 불꽃(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관한 이야기 /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
“내 영을 너희 안에 두리라!”
바퀴에 대한 그레고리오의 우의적 해석은 거룩한 독서에 대한 역동적인 이해를 담고 있다. 우리는 거룩한 독서에 대한 이 역동적 관념을 특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읽는 이와 함께 자란다는 사실과 함께 깊은 주석학적 연구의 척도가 결국 윤리적이고 영적인 진보라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레고리오는 다음의 핵심적 진리로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주석학 - 지성 - 과 삶 - 마음의 발걸음 - 사이에는 하나의 대화, 일종의 항구적인 상호간섭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점을 머지않아 다시 취급하게 될 것이다.(82)
1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2월 성령 열매성월 3주간 기쁨 / 선행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5-8장
1토요일 이웃 종교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
야훼(여호와)라는 신 이름의 의미
고대 사회로 올라갈수록 이름은 그저 부르기 좋은 호칭이거나 단순한 언표 이상의, 이름과 그 이름의 주인공 사이에 놓인 긴밀하고 본질적인 연결성이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이름과 그 이름의 주인공이 분열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인공은 이름과 함께 이름으로서 실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사회에서 이름이란, 이름을 지닌 자의 본질 표현이고 그 이름에 부합되는 고유한 능력과 속성을 포함하며 동시에 그것을 표현한다. 야훼(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십계명의 한 계율이 의미하는 것은, 이름은 곧 야훼 하나님 그 실재 자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의식이 아주 강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를 두려워하여 경전을 읽을 때 ‘야훼'라는 히브리어 네 글작 나티나면 ‘아도나이'(主)라고 달리 읽었다. 그리고 기원전 3세기 무렵 히브리어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될 때, 히브리어 ‘아도나이'는 주(主)라는 같은 의미의 헬라어 단어인 ‘큐리오스'로 대체되어 번역되고 읽혀져 왔다.
구약학자 폰 라드는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붕괴되기 전에는 ‘야훼'라는 신 호칭은 딘지 예루실뀀 성전에서 특별한 기회에만 사용되었고, 유대인의 회당 예배에서는 이미 사용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힌다. 이것이 왜 신약성경에는 ‘야훼' 또는 '여호와'라는 유일신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가 하는 신학적이며 역사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비록 신의 이름을 달리 불렀을 망정 아브라함과 모세 같은 예언자들이 ‘야훼' 이름을 부르던 그 유일신 앞에서의 경건성을 잃어버리거나 변질시킨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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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2월 성령 열매성월 4주간 사랑 / 평화☨
https://youtu.be/pW-SzmMIhX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