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시작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입니다.
그리고 끝은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심판이니 단죄니 용서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비결은
아버지로부터 자비를 받아서 되는 것인데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심판과 단죄는 하지 않고 용서할 때
그만큼 자비를 주신다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이 복음 말씀을 저는 수없이 묵상을 했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묵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저는 이번에 보게 됐습니다.
전에는 단죄나 심판이나 용서를 사람끼리 주고받는 그런 차원에서
오늘 말씀을 주로 묵상했는데 이번에 더 명확히 성찰하게 된 것은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에게 줄 때
그런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는 것은 이웃에게이고
받는 것은 하느님에게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하는데
저뿐 아니라 우리는 인간끼리 주고받으며 살고,
그러는 가운데서 조금 더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조금 현명한 사람은 떼 먹히는 일이 있을지라도
주는 사람이 받고 주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는 것을,
많이 줄수록 많이 받고 적게 주면 적게 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받기 위해 주고 그래서 떼 먹힐 경우 상처를 받습니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이 싫어서 아예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삽니다.
그런데 진정 현명하고 신앙적인 사람은 줘버리고 맙니다.
아예 받을 생각이 없고 그래서 떼 먹히지도 않고
하느님께로부터 받기에 하나의 사랑 라인이 형성됩니다.
사랑 라인이란 이번에 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영어로 하면 Love-Line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말의 내리사랑이라는 말과 비슷하고요.
사랑에는 기울기가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끼리는 기울기가 없어서 준만큼 받으려고 하는데
줘버리고 받지 않으려는 사랑은 기울기가 있는 사랑이고
하느님 사랑을 닮은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내리사랑이 부모로부터 자녀에게로,
그리고 그 자녀가 부모가 되어 또 자녀에게 이어지듯
신적인 내리사랑도 아버지인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로
그리고 우리가 다시 사랑의 아버지가 됨으로써 이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시 명심해야할 것은
받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아버지인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주는 것은 내가 사랑과 용서의 아버지가 되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자녀에서
사랑하는 아비가 되기로 결심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받는 것은 아버지인 하느님으로부터
주는 것은 내가 사랑과 용서의 아버지가 되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되도록~~성찰하고 명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