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3월 30일 수요일
1교부들의 말씀 묵상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 5,19)
불꽃과 빛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일은 나누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은 ‘아들은 자기 스스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이 스스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면 그는 태어난 존재이고, 그가 태어난 존재라면 그를 낳으신 분에게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낳으셨습니다. 이들을 낳으신 분에게는 모자라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히 함께하는 이를 낳으신 분은 낳을 때를 살피지도 않으셨습니다. 말씀을 낳으신 분께서는 말씀을 낳아 줄 어머니를 찾지도 않으셨습니다. 또한 이 아버지께서는 나이가 많다는 까닭으로 자신보다 못한 아들을 낳으시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난 뒤, 하느님께서 당신 노년에 아들을 낳으셨다고 말히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노년이라는 것이 없듯이 아들에게는 성장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 두 분은 자신도 늙지 않고 상대를 자라게 하지도 않습니다. 대등한 존재가 대등한 이를 낳은 것이며, 영원한 분이 영원한 분을 낳으신 것입니다.
영원한 존재가 어떻게 영원한 존재를 낳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 세계의불꽃이 현실 세계의 빛을 낳는 것과 같습니다.
빛을 낳는 불꽃은 그것이 만들어 내는 빛이 존속히는 동안 존속합니다. 불꽃은 시간적으로 그것이 만들어 내는 빛보다 선행하지 않습니다.
빛은 불꽃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시작됩니다. 나에게 빛 없는 불꽃을 줘 보십시오. 그러면 나도 아들 없는 아버지 하느님을 그대에게 주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1성인 / 영적 글 묵상
말씀의 불꽃(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관한 이야기 /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
오늘
12세기 유다 주석의 거장 라쉬는 신명기 26,16을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오늘 -하욤 하제: 오늘 바로 이날 - 이란 무슨 뜻인가? 거록하신 분 - 그분은 찬미받으소서! - 은 현재의 시각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명령하신 것이 없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오늘은 계시가 있고 난 뒤에 40년째 되는 해에 자리잡고 있다. 보라. 알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옐에게 말했다: 토라(율법)는 너희에게 그토록 귀중한 나머지 모든 날이 계시의 바로 그날이 되어야 한다고 하느니라"(104)
1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3월 영적 수련 성월 4주간 성화/일치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27-28장 / 사도 1장
1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1부 고대 그리스도교
제 2기 : 312-60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부터 그레고리오 대교황까지
제4절: 고대교회에서의 수덕과 수도생활
수도생활의 본질:
“콘스탄티누스 전환”은 엄청난 힘들을 해방시켰다. 그 힘들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침투시키기 위한 거대한 선교적 충동으로 전환되었다. 활동가들이라면 그 목표를 피상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으로 닿성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어떠한 무력화도, 어떠한 정치화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기서 시대의 필요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으로서 , 교회 내부에서 수도생활이 발전하였다.
그것은 일찍이 없었던 불가항력적인 힘을 가지고 콘스탄티누스 시기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4∼5세기에는 하나의 운동으로 증대되어 그리스도교 백성의 모든 계층을 사로잡았다. 요컨대 그 시대는 강력한 금욕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그 특징은 마지막 박해시대에서 유래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복음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성화할 의무를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적인 수덕가들과 수도자들에게서 원시교회의 카리스마, 그리고 초대교회의 열의와 종말론적 깊은 신심같은 것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순교자의 정신은 하느님에 대한 궁극적이고 완전한 헌신과 그리스도룰 금욕적으로 따르려는 정신으로 변하였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에게 바치기 위하여 사막을 찾아가고 있었다.
수도생활의 두 “창시자’인 안토니오 성인과 파코미오 성인의 전기를 읽고 또는 후기의 수도자 문헌과 격언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엄격한 고행자들이 대단히 사랑스럽고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관대하고 아량이 넓은 깊은 내면성과 감수성으로 가득찬 인물임을 발견하게 되는 데에 새삼 놀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어떠한 부정적인 해석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교회와 세상의 한복판에서 하나의 적극적인 임무를 다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도생활의 종교적인 강력한 힘에서, 그 시대를 위한 종교적인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필요한 힘들과 충동과 깊이룰 얻어내고 있다.
그 시대의 위대한 성인들이나 교부들은 모두 스스로 수도자였거나 아니면 수도생활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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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난민을 위한 기도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