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제가 감탄한 것이 사순절에는 한 분도 <여기밥상>에 손님이 없더니
부활 대축일이 지나자 손님이 생기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가톨릭 신자들이라서 사순절에는 삼간 것이기에 제가 감탄한 거지요.
어제도 부부 세 쌍이 <여기밥상> 손님으로 오셨는데
미사 중에 늘 하던 대로 말씀 나누기를 하였고,
한 분이 어제 사도행전 한 구절을 가지고 성찰하신 것을 나눠주셨습니다.
보통 남자들이 무엇을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듯 그 형제님도
당신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할 때는 그렇게 힘이 들고 결과도 좋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하려는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맡길 때는 일이 순탄하고
결과도 좋았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자주 당신 힘으로 하시곤 한다는 거였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지혜로서 자주 힘을 빼라고 합니다.
흔히 어깨에 힘을 빼라는 말도 합니다.
운동할 때도 힘을 빼야 힘이 지나치거나 경직되지 않아서
다치지도 않고 경기 결과도 좋음을 우린 많이 경험하지요.
운동이나 세상사도 이러할 진데 구원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오늘 베드로 사도는 불구자를 치유한 일로 인해 유다 지도자들에게
심문을 받으면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이에 베드로는 자기들이 한 일은 착한 일이라고 하고,
불구자가 치유된 것은 구원 사건이라고 규정합니다.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심문받는 거라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착한 일로 구원을 이뤄야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구원을 이루려면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착한 일이라만 주님이 하라시는 대로 하는 일이지요.
불구자를 고쳐주는 좋은 일일 뿐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하다고 할 때는 어른 말을 잘 들었을 때이고,
주님을 선한 목자가 아니라 착한 목자라고 할 때도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양들을 위해 당신 목숨을 바칠 때이듯이
착한 일은 윗사람에게 순종하여 좋은 일 하는 것을 뜻하지요.
일의 시작부터 일의 끝까지 자기는 빠지고
주님으로 시작하고 주님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니 일을 시작하고,
주님의 힘으로 그 일을 추진하며,
주님의 섭리대로 일을 끝마치고는 결과를 주님께 영광 돌릴 때
우리는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 구원 사업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사업의 도구인 베드로도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자들 모두 자기 꿍꿍이가 있어서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너무도 허망하게 돌아가시자 오늘 복음에서 보듯
출세의 장소인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래아로 돌아가 그물을 칩니다.
그런데 인생도 실패하고 밤샘 그물질도 실패로 돌아갑니다.
자기의 목적으로 무엇을 하고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한 것이
다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등장하고 주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하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그가 153마리나 잡게 됩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처럼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라고 질문을 받는 우리도
우리 인생의 전면에 내가 나서지 않고 주님을 등장시키고,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을 힘입어 무엇을 해야 함을 다시 한번 성찰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