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5월 1일 부활 제3주일
고 도미니코 ofm
부활 3주일에 우리는 요한 복음의 끝부부인 21장의 내용을 듣습니다. 21장은 베드로의 사목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의 사목직을 맡기기 전에 당신께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하십니다. 티베리아 호수에서 시몬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이 고기잡이를 나갔지만 제자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없이 우리는 악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아무런 신앙의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실패에 애정어린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얘들아’라는 이 호칭은 바로 애정어린 친밀감의 표시입니다. 부활체험의 시작은 이처럼 따뜻한 마음의 건넴에서 시작됩니다. 얼어 붙은 마음에 따뜻한 사랑으로 인해 녹듯이 사라지는 사랑의 체험이 바로 부활체험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 줍니다. 부활체험은 제자들처럼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 생활의 비천한 인생을 따뜻하게 맞이 해주시는 분은 바로 사랑의 주님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세번의 질문을 통해서 부활체험이 눈높이 사랑으로 내려오심을 깨우쳐 주십니다. 첫번째 질문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시몬 베드로는 자신있게 대답했을 상황이지만 예수님의 부인한 가슴아픈 과거가 떠올라 가슴이 절여오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질문에 나오는 ‘사랑하다아가파오)’ 동사는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조건없는 순수한 사랑을 뜻하고 베드로의 대답에 나오는 동사(필레오)는 친구 사이의 우정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두번째 질문은 앞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에 맞추어서 질문을 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입니’다. 이 질문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제쳐 놓음으로써 눈높이에 맞게 질문을 하십니다. 더 나아가 세 번째 질문에서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제쳐놓음은 물론 더우기 동사까지 베드로가 이해하는 좋아함의 의미로 더 낮춤으로써 질문의 강도를 더욱 떨어뜨리십니다. 세 번의 질문에 베드로는 똑같은 대답을 하지만 마지막 질문의 대답에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집니다. 그분이 질문의 강도를 떨어뜨리셨을 뿐 아니라 세 번에 걸친 자신의 부인을 되갚기라도 하듯 세 번이나 질문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섭섭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은 베드로의 대답에 한결같이 “내 어린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십니다. 바로 사랑의 일관성을 보여주십니다.
교회의 사목직은 주님께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둡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극도의 순수한 사랑만을 요구하지는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힘없이 배신의 늪에 빠져 버린 베드로에게 최고의 사목직을 맡기십니다. 실패한 적이 없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넘어진 경험이 있는 이가 그 심정을 알기에 넘어진 이를 더 잘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사목직은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의 개인적 사목직이기도 합니다. 부서진 마음과 비천한 체험을 통한 사랑의 부활체험을 겪은 후라야 진정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1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5월 영적 수련 성월 1주간 회개/겸손
금주간 성서읽기 사도 20-23장
1일요일 성체의 날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볼세나(Bolsena)의 피묻은 성체포
이탈리아 -1263년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황의 부탁으로 열절한 사랑과 함께 다음과 같이 반복되는 문구를 사용하여 환회가 넘치는 축제문을 썼다.
곧, “라우다 시온(Lauda Sion), 살바토렘 (Salvatorem) …당신의 구세주, 당신의 스승, 당신의 목동, 당신의 양육자, 시온아, 찬미가를 부르세! "
우리도 짧은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이러한 찬미가를 소리맞춰 노래 부르자. 성체 축일은 마땅히 성대한 행렬을 해야 하는 유일한 축제이며 성체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꽁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종교의 모든 표현을 거리로부터 내쫓아 교회의 담 안에 가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사람들에 맞서서 이런 공식적인 종교의 예식을 통해 하느님의 권리를 변호하려 하지만 1 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세속적인 행렬과 행사 개최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더구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렬, 부끄러움을 모르는 옷차림, 방해를 주는 시끄러운 소리까지도 허용되고 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로 돌려라 ! 우리는 적어도 1 년에 한번쯤 우리의 거리와 광장을, 또 우리의 창문과 발코니를---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그 많은 은혜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주님이신 하느님께 공식적으로 공경을 표시하는 곳으로 변화시키도록 하자.
성체 축일은 700 년 동안 실시되어 왔다. 우리는 이 성체 축일을 보전하고 아름답게 해야 한다. 우리가 언젠가 천상의 행렬에서 하느님을 영원무궁 찬미하고 찬양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선사해 주시는 동안 이 축제에 참여하도록 하자.(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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