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에다가
성령과 믿음도 충만한 사람이라고 사도행전은 얘기합니다.
인성적으로도 훌륭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훌륭하다는 완벽한 찬사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착함에 대해서 한 번 성찰코자 하는데
우리말의 착함은 항상 그 번역에 있어서 적절한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한자어가 아닌 순 우리말로 번역하려고 착한 사람이라고 번역한 것 같은데
제 생각에 이것은 착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선한 사람이라 번역함이 좋을 듯 하고
그래서 200주년 성서도 선한 사람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착한 사람이란 윗사람 말을 잘 듣는,
말하자면 순종을 잘하는 사람을 특히 어린이를 많이 일컫지요.
이에 비해 선한 사람은 착한 사람과 좋은 사람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르나바 사도의 경우는 선한 사람이라고 함이 옳을듯 합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이라고 해야 악한 사람과 비교하여 얘기할 때 분명한 비교가 되고
선과 악과 연관지어 얘기할 때도 개념이 명확해지지요.
제 생각에 선인이나 악인이나 선을 좋아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일지라도 좋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고 자기 자식한테는 좋은 것을 줍니다.
주님께서도 기도에 대해 가르치면서 악한 사람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더 그러시지 않겠냐고 하셨잖아요?
그러므로 선인이나 악인이나 다 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악인은 그 선을 자기 입이나 자기 자식 입에만 집어넣고
다른 사람 입에는 넣어주지 않거나 악을 주는 데 비해
선인은 그 선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차이라 하겠습니다.
선인이라고 하여 선을 자기 입에 넣지 않고 남의 입에만 넣어주는 사람이 아니고,
자기 입에는 나쁜 것만 넣고 남의 입에는 좋은 것을 넣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인도 자기 입에 좋은 것을 넣는 사람인데
악인과 차이는 자기 입에만 넣는 사람이 아닌 거지요.
그러니까 자기 입에도 남의 입에도 같이 넣는 겁니다.
우리말의 콩 하나도 나눠먹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잘 알 듯이 나누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뭣을 나누느냐,
달리 말해서 어떤 선을 나누느냐에 따라 그 나눔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지상의 선을 나누는 것도 좋고 의미가 있지만
천상의 선을 나누는 것이 더 좋고 의미있지요.
그리고 천상의 선을 나눈다는 것은 복음에서
좋은 것을 주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신다고 하신 것처럼 성령을 나누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나누는 것 곧 선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은 바르나바 선한 사람이라고 한 다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덧붙인 것이고 교회는 그를 사도라고 합니다.
어쨋거나 인성적으로나 영성적으로 훌륭한 바르나바를
그의 축일인 오늘 본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