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주님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지 묻는데
이 질문에 저라면 '그러면 너희는 어찌하여 단식을 하느나?'고 되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내가 단식을 해야 한다면 왜 해야 할까?
요즘 단식의 대세는 미용과 건강을 위한 단식입니다.
저도 단식을 생각할 때 그런 점도 고려 사항이지만
그것은 단식을 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되지 못하고
뭔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 단식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계속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되고,
이 세상의 만족을 이제는 끊어야겠다고 생각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술과 음식을 끊는 거지요.
그것은 먹는 것이 이 세상 만족의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고,
돈 크게 안 들이고 쉽게 만족을 취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욕구 불만일 때 먹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을 때 많이 먹고 살찌게 된다는 것이
심리학 계에서 통하는 정설이고 비만 치료를 할 때 심리 상담부터 하는 이유지요.
아무튼, 저에게 있어서 단식을 하는 제일 큰 이유는
정신을 차리고 이 세상 만족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더 중요한 이유를 말씀하시고,
저도 그것을 알기에 이왕 단식을 한다면 그 이유 때문에 단식코자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격적 단식이고 사랑의 단식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단식을 한다면 혼인 잔치의 손님으로서 하라고 하시며,
신랑이신 당신의 혼인 잔치 때는 즐겁게 먹고 마시지만 당신을 빼앗길 때가 되면
단식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사랑 때문에 먹고 사랑 때문에 단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성취의 사람이라면 자기 목표를 이루려고 단식 투쟁을 하겠지만
사랑의 사람이라면 사랑 때문에 먹고 사랑 때문에 먹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같이 슬퍼하는 사람이라면 단식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죽거나 하면 먹는 것이 죄스러워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지만, 술은 오히려 더 먹게 돼 더 죄스럽습니다.
술로써 슬픔을 달래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니 역시 사랑이 한참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