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죽은 딸을 살려달라고 청하는 회당장과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입니다.
회당장은 예수님 앞에 나와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바로 응답하십니다.
반면 여인은 예수님 앞이 아닌
뒤로 다가갑니다.
예수님께 자신의 치유를 청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기도를 잘 하지만
정작 본인을 위해서 무엇을 청한다는 것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이 여인은 열두 해 동안이나
병을 앓았습니다.
12라는 숫자는 완전수로
오랜 기간 고생하였음을 의미합니다.
혈루증은 피를 흘리는 병으로,
피는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혈루증은 생명을 잃어가는,
즉 죽어가는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이 여인은 오랜기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 앞에 나서서
자신의 병을 치유해 달라고 청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도,
그리고 매 순간 피를 흘리는 자신을 보면서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 여인이 청하지 못하였는지
이유를 찾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비록 말로 청하지 못했지만,
예수님 앞에 나서서
나의 상태를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여인은 치유됩니다.
여인의 믿음은 여인을 움직이게 했고,
그 움직임은 치유로 이어집니다.
나를 위한 청원 기도가 어색하기도 합니다.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드러내기에
그것을 드러내기가 부끄럽기도 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기도해 주는 것이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줍은 나 혼자만의 기도도
하느님께서는 놓치지 않으십니다.
고통의 상황에서 기도할 힘조차 없어서
맥 없이 두 손 놓고 앉아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떠오르지 않아
먼 하늘만 쳐다보기도 합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나오는 작은 목소리는,
그것이 비록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우리를 생명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