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자신들이 사는 길거리에서 주님께서 가르치셨어도
그들은 주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식탁 공동체는 친밀함을 뜻하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까지 주님께서 오셨음은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움을 보여 줍니다.
물리적인 가까움은
마음의 가까움도,
친밀함도 가지고 오기 때문에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불의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가까움으로
사람들은 서로 닮아갑니다.
같은 것을 먹고
같은 환경에 처하게 되며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같은 것을 먹는 것은
외모까지 비슷하게 만들어
서로를 닮은 꼴로 만들어 갑니다.
그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님과 그들 사이의 친밀함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가까움이
항상 닮은 꼴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같이 있어도 의견을 모으기 보다는
흩을 수 있고,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즉 물리적인 가까움에 덧붙여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어야
온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다면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불의한 행동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 친하다는 것은
서로를 잘 아는 것이며,
서로의 고유한 모습을 받아들이려는 마음도
함께 있는 것입니다.
수용성이 없는 관계는
피상적인 관계로
어려움이 오면 쉽게 깨지고 맙니다.
자신의 이익 때문에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도
이해 관계가 무너지면
그 관계는 적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진정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받아들이려는 의지는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