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 무장해제를 하고! 주님으로 무장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저는 이 복음 말씀을 읽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야박하게(?)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실까 하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너무 가혹하신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빵을 가져가고, 여행보따리도 챙기고, 돈도 가져가고 하면 마음이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하느님을 마음속에 품고 가야되는데, 다른 것들을 가져가게 되면 마음속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으로 쏠려야 할 마음들이 빵으로 여행보따리로, 돈으로 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분심(分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눌 분(分) 마음 심(心)입니다. 마음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갈 때 갈라지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 된 마음으로 그 마음속에 하느님을 품고 가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가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을 그대로 따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사부님입니다. 첼라노 1생애 1부 9장 22에 보면 사부님께서는 마티아 사도 축일날 길을 떠날 때 식량자루도 돈지갑도 빵도 지팡이도 가져가서는 안되며 신발도 두벌의 옷도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복음 말씀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 온 정성을 기울여 하고 싶어 하던 바다!” 라고 말씀하시고 즉시 발에서 신발을 벗어버리고 손에서는 지팡이를 치워버리며 한 벌의 옷에 만족하고 허리띠는 가느다란 새끼줄로 바꾸어 버렸다고 합니다.
사부님을 따르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입니다. 수련소에 오기 전에 선배형제들에게 수련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수련소의 추위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수련소가 추우니까 침낭을 챙겨가라, 따뜻한 것들을 챙겨가라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저는 그 이야기에 혹했지만 오늘 복음을 떠올리며 수련소에서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러한 것들을 가져 오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휴가 때 집에 갔습니다. 추위를 잘 타는 저를 아시는 부모님과 형은 추우니까 옷도 좀 챙겨가고 이것 저것 따듯한 것 좀 챙겨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소에서는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가서 따듯한 것들을 안 가져가면 후회할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후회하더라고 그런 것들을 가져갈 수가 없다고 말씀을 드리고 수련소에 들어왔습니다. 수련소에 들어온 그 날 바로 후회했습니다. 수도원은 정말이지 너무 추웠습니다. 마치 냉장고에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침낭도 좀 가져오고, 따듯하게 해줄 담요, 핫팩 이런것들을 좀 가져올걸 ...내가 미쳤지’. 이렇게 추위 속에서 몇 주를 보내다가 결국은 발가락에 동상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수련소에서 다른 것들은 다 필요없다고 하느님만 있으면 된다고 복음에 나와있는 말씀대로 아무것도 안 가져오고 추위를 참으면서 살았는데,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것은 동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자 하느님이 원망스럽고, 마음이 서러웠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추위를 통해 나에게 주신 것이 동상 밖에 없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추위 속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특히 성무일도를 바칠 때 1주간 주일,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을 찬미하는 아침기도 찬가에서 추위와 더위야 주님을 찬미하라. 추위와 냉기야 주님을 찬미하라 이 부분을 더 마음을 담아 할 수 있었고, 추위는 하느님을 두 번이나 찬미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형제들은 추위를 잘 타는 저를 보고 이불도 나눠주고, 침낭도 나눠주고, 따듯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형제들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또 동상에 거리니까 어떤 분께서 약도 주셨고, 털 실내화도 신게 되었습니다.
수련소에 올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저에게 하느님께서는 침낭도 주시고, 이불도 주시고, 털 실내화도 주시고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침낭 안에서, 이불 안에서, 털 실내화 안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또 이것들을 저에게 준 형제들 안에서도 하느님을 만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느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하느님을 품지 않고, 침낭, 이불, 털 실내화등 따듯한 것들로 무장을 하고 수련소에 왔더라면 인간적으로는 따듯하게 지내고 동상도 안 걸렸을지 몰라도 하느님은 못 만났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서는 추위를 통해 동상만 주신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수련소의 추위를 통해서 오늘 말씀이 바로 저에게 살아 있음을 진실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로 우리 자신을 무장 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들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해주실 것임을 믿고, 하느님을 품고 나아가는 것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아가는 것들이 쉬운 길이 아님을 저는 압니다. 순간 순간 후회가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도 제가 가진 것들을 버리고, 그 부족함 안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해주실 것임을 믿고 나아가렵니다.
감동입니다..ㅠㅠ
모든 것을 마련 해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 품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