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하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면하게 하고 싶습니다.
결혼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얼핏 보기에 상당히 비관적인 관점입니다.
결혼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권장할 만하지는 않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현세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실로 이런 이유는 연애에 실패한 사람이 중이 된다는 옛날의 시각이나
수도 생활이 현실도피 용이라는 왜곡된 시각에 힘을 실어주는 것밖에 안 됩니다.
결혼한 저의 친구들을 보며 저도 바오로 사도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고,
그래서 저만 수도 생활의 행복을 사는 것만 같아 미안해한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제가 현세 고통을 친구들만큼 겪지 않고 행복한 것 사실이지만
그럴지라도 제가 현실도피 용으로 수도 생활을 택한 것은 아니지요.
분명히 말하지만, 현세의 고통을 피해 수도자가 된 사람은
행복하지도 않고, 수도 생활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도 생활이 행복한 것은 현세의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잖습니까?
반대의 시각으로 보면 수도자는 현세의 쾌락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가족 부양의 책임과 같은 고통은 없더라도 고통이 없는 사람이 아니지요.
사실 수도 생활을 제대로 한다면, 다시 말해서 더 많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고통을 감수하고 감당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가 결혼하지 않음으로 현세의 고통을 면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모든 고통의 회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사람이 정작 감수하고
감당해야 할 고통 대신 현세의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행복을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며
이 하느님 나라의 행복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프고, 미움을 받아야 하는 행복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고,
하느님 나라를 위한 고통입니다.
불교에서 인생은 고해라고 하듯
사는 것이 고생이고 고통스럽지 않은 인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틀어보면
누구나 다 고통을 겪는데 그 고통이
현세의 고통이냐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위한 고통이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어떤 고통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 어떤 행복을 선택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