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오늘 복음은 어떤 여인과 주님 사이의 짧은 대화입니다.
어떤 여인이 성모 마리아가 행복하다고 얘기하자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가 오히려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은 저를 성찰하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님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가 오히려 행복하다.”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이가 오히려 행복하다.”라는 말씀이라면
나는 진정 이 말씀처럼 행복해하고, 이 말씀을 실천할 것인가? 이런 반성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나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것이 같은 뜻이지요.
그런데 향기로운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은 저를 풍요롭게 하고
향기나게 하기에 이 말씀은 저는 선뜻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싶지만
하느님 뜻을 실천하라는 말씀은 저의 뜻을 꺾어야 하는 것이기에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억지로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이나
고생하고 무거운 짐 진 너희는 모두 내게 오라는 주님 말씀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는 주님 말씀은 기껍지 않을 때가 많지요.
실로 저는 삼종 기도를 바칠 때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고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종종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리고 제 안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바꿔 기도하곤 하지만, 의지적인 기도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아닙니다.
공자는 60에 이순耳順하고, 70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하라고 했는데
60을 넘어 70으로 가는 저는 몇 살이 되어야
아버지 뜻이 내 뜻이고, 내 뜻이 아버지 뜻이 될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 저의 행복이 될지,
다시 말해서, 몇 살이 되어야 하느님을 진정 사랑하여
내 뜻을 꺾는 것이, 전혀 싫지도 괴롭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것이 행복이 될지, 성찰하고 반성하는 오늘 저입니다.